그러나 건립 과정 곳곳에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건축 및 개관 준비 기간의 부족, 엉성한 전시 설계, 박물관 건립 조직의 이원화로 인한 전문성 결여, 전문 학예직의 절대 부족과 예산 부족, 5년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박물관 부지 옆 미군 헬기장 이전 문제 등….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치밀하고 전문적인 사전 준비 없이 서둘러 중앙박물관 건립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는 무리하게 공기를 맞추려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일단 개관 날짜를 늦추고 모든 문제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들을 심층 분석해 본다.》
▽건축 및 개관 준비기간의 부족〓1997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의 총공사기간 62개월 중 40개월이 경과된 현재 박물관 건축 공정률은 33%에 불과하다. 이미 예정보다 공사 일정이 늦어졌다. 전문가들은 “5년만에 박물관 건물을 짓고 건물 완공 후 1년만에 전시 준비를 마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무리”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규모의 외국 박물관들은 공사기간만 10년을 잡고 있다는 것.
이인숙 경기도박물관장은 “정해놓은 날짜에 집착해선 안된다. 완벽한 박물관이 되려면 개관에 앞서 모형 등을 만들어 전시 테스트 등을 해보고 국내외 관련 전문가들의 검증과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한 미술사학자는 “시멘트 건물의 경우 전시 유물에 손상을 주는 시멘트독이 발생하는데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엉성한 전시설계, 뒤죽박죽 공사〓처음부터 박물관 설계가 부실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97년 설계를 맡은 정림건축이 설계를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립추진기획단이 서둘러 설계 승인을 내주었던 것. 이후 지금까지 설계를 계속 고치고 있는 상황이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설계를 수정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박물관 공사가 늦어지고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전시실과 전시 구성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물관은 일반 사무실 건물과는 달라서 민족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특수 목적의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설계 전반에 걸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교한 ‘밑그림’을 그린 뒤 그에 맞춰 지어져야 된다는 것.
▽조직 이원화로 인한 전문성 결여〓박물관 건립 조직의 이원화도 상당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현재 박물관 건립 업무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별도로 구성된 건립추진기획단이 맡고 있다. 기획단과 현 중앙박물관의 조직이 이원화되어 있는 것. 박물관을 짓는데 박물관장의 결재 라인이 빠져있다는 것은 전문성의 결여를 낳기 때문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를 집중적으로 지적받았지만 아직 시정되지 않고 있다.
현재 건립추진기획단의 전시운영과 인력은 박물관 학예인력 5명이 포함돼 이들의 자문을 받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행정직 중심이어서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박물관 건립은 유물전시와 학예직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건물 중심, 행정직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 인력이 없다〓새로 짓는 박물관은 전시실 7000여평에 전시유물 1만4000여점. 지금의 경복궁 내 중앙박물관(전시실 2100여평, 전시유물 4500여점)보다 3배 정도 늘어난 규모다. 이를 담당할 학예직 전문인력도 당연히 늘어나야 한다. 새 박물관에 필요한 학예직 인원은 약 320명(최소 220명). 그런데 현재의 인원은 4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력 충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앙박물관은 지난해 학예직 73명 증원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행정자치부에서 32명으로 축소 조정됐고 그나마 기획예산처가 예산 문제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의 40명 인력으론 일상적인 박물관의 업무처리도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내년말부터 이사를 위한 유물 포장이 시작되면 박물관 업무는 마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정된 건물 완공 시기까지 남은 시간은 1년반 남짓. 숙달된 전문인력이 되려면 최소한 3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인력을 선발해도 늦은 셈이다.
특히 새 박물관엔 동양실(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실)이 들어서는데 중앙아시아실을 빼고는 국내에 관련 분야의 전문인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물 보존처리 인력도 증원되어야 한다. 현재 중앙박물관의 보존처리 인력은 임시직까지 포함해 겨우 10여명. 비슷한 규모의 영국 브리티시 박물관은 84명,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76명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명색이 세계 5위 수준의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허망하게 들릴 뿐”이라며 “시급히 인력을 증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립박물관보다 적은 평당 810만원짜리 박물관〓예산 부족도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다. 현재 중앙박물관 건축비는 평당 810만원(건평 4만600평에 3300억원). 지방의 국립박물관인 제주 춘천박물관도 평당 1200만원선, 사립박물관인 통도사 성보박물관도 1400만원이었다. 지방 국립박물관이나 사립 박물관보다도 예산이 적다는 것 자체가 부실 우려를 안고 있다.
또한 3300억원 예산은 1995년도에 책정된 것으로 그동안의 건축비 인상률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외국 전시 유물 구입 및 섭외를 위한 비용은 들어있지 않다. 평당 비용도 올리고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비용도 가산해 예산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박물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은 “부족한 예산 등은 진행과정에서 추가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헬기장 이전과 주변 환경 문제〓박물관 건립 부지 앞마당에 위치한 미군헬기장 이전도 막막하다. 1997년 이래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왔으나 아직도 해결 난망이다. 그동안 한강고수부지, 미군기지 내부 이전 등을 놓고 협상을 별여왔으나 소득이 없다. 건립추진기획단의 김준영 단장은 “미군에 새로운 안을 제시해 놓았고 건물 완공 이전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헬기장 이전 문제나 비용문제는 박물관건립추진기획단의 차원을 넘어선다. 외교통상부 국방부 등 범정부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박물관 주변 환경도 문제다. 박물관 정문 앞은 아파트 숲으로 가려져 있다. 현재 예산은 주로 건물을 짓는 비용. 주변 환경 조성에 대한 예산은 없다.
▽2003년12월 개관, 가능한가〓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회 소위 역시 2003년 12월 전면 개관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한국미술사)는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고 무리하게 박물관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 질타했다.
그런데도 2003년 12월 개관 일정에 맞추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무리하게 일정을 고집한다면 부실 박물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한 전문가는 “문제점을 감추지 말고 이 기회에 모두 공개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쉬쉬하면서 2003년 개관이 가능하다고 말해놓고 그때가서 불가능하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