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경쟁하면서 친구로 지낼 수 밖에 없는 이웃입니다. 젊은 나이로 스러졌지만 두 나라의 우정에 크게 기여한 이수현씨의 고귀한 뜻을 음악으로 기리려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51)씨가 1월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열차사고로 숨진 고 이수현씨의 추모 음악회를 도쿄 중심가의 산토리홀에서 연다. 정씨는 3월2일 500석 규모의 산토리홀 소극장에서 일본 피아니스트 마츠카와와 협연으로 김동진 ‘가고파’, 블로흐 ‘니조’ 등 열 세 곡을 연주한다. 입장료와 모금을 통한 수익은 전액 이씨의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
정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민단계 재일동포 2세다. 지난해 10월 아셈 음악축제에서 윤이상 곡을 지휘, 주목받은 ‘조선’국적의 지휘자 김홍재씨와는 일본 도호음대 동창.
말수가 적어 음악인들 사이에서 ‘크레믈린’으로 통하는 그는 보기와 달리 음악을 통한 사회적 발언에 열심이다. 1985년에는 김씨와 일본에서 ‘남북합동 콘서트’를 열기로 했으나 정부가 출국을 불허해 무산됐다. 남북합동 콘서트는 15년만인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축하공연으로 비로소 성사됐다.
1996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평화통일기원음악제’에서 월북 작곡가 김순남의 ‘이른봄’을 초연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음악을 통한 자선 구호활동을 위해 클라리네티스트 김현곤 주도로 창단된 ‘채리티 앙상블’ 창단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면서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가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지요. 역사는 깨끗이 정리해야 하지만 두 국민 사이에는 얼마든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수현씨의 콘서트를 결정하자마자 일본 사회의 반응이 너무도 뜨거운데 놀랐다고 말했다. 대관이 어렵기로 소문난 산토리홀에서 거짓말처럼 공연 날짜가 나왔고, TV 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해 ‘공연을 문의해오는 사람들에게 입장권이 동났다고 사과하느라 바쁜 지경’이 됐다.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두 나라 사이에 감정의 앙금이 다시 쌓여가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양국 국민이 흉금을 터놓고 속마음을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은 문제들이 풀려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