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집에서 된장 간장을 담가보신 분 있으세요?”
주변을 살피며 6, 7명이 손을 든다.
“어때요. 맛있었나요?”
“아유. 괜찮았으면 여기 왔겠어요?” 한바탕 웃음.
22일 유기농산물 전문 쇼핑몰 62농닷컴(www.62nong.com)이 주최한 ‘장 담그기
체험여행’ 현장인 경기 양평군 광이원농장 (031―774―4700). 장은 예로
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담가야 잘 숙성하고 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날 참가자는 50여명. 당초 버스 한 대에 타고 갈 수 있는 40명 예정이었지만 “내 차로라도 따라가겠다”는 사람들까지 뿌리칠 수는 없었다. 삼성생명에선 주부 설계사 10여명이 단체로 참가했고 공인회계사 김선구씨(38·경기 광명시)는 유기농산물 마니아인 부인 안향씨(37)의 강권에 못이겨 일을 잠시 제쳐두고 두 아들 건우(10), 승우(4)와 함께 왔다.
보기좋게 곰팡이가 핀 메주, 까만 참숯, 고추와 대추, 천일염, 암반수 등 장 담그기 재료들이 놓인 책상을 사이에 두고 농장주인 김광자원장(42)과 ‘학생’들이 마주했다.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공책을 깨알같이 채워가는 주부들의 진지한 자세는 마치 학창시절 야외수업을 연상케 했다.
“메주는 깨끗이 씻어 햇볕에 3, 4일 말려 준비하세요.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요. 숯과 고추, 대추를 띄우고 50∼60일 정도 지난 뒤 체에 밭치면….”
김씨의 강의와 시범에 이어 참가자들의 차례. 저마다 점찍어 둔 항아리에 정성들여 배운 대로 장을 담근 뒤 이름표를 붙인다. 곳곳에서 “자기 항아리가 더 예뻐 보이는데…”, “내 메주는 덜 발효된 것 같아”라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남의 떡이 커 보이나 보다.
대학 졸업반인 딸 문지연씨(24)와 함께 서툰 솜씨로 실습을 하던 주부 윤미선씨(50·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시댁에서 갖다 먹던 된장과 간장을 이제 내 손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담가놓으면 연말이나 돼야 된장맛을 볼 수 있다. 간장은 3년정도는 묵혀야 제맛이다.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에겐 농장에서 숙성한 된장과 간장을 주는 대신 항아리는 ‘압수’한다.
기다리던 점심식사. 바로 옆 카페 겸 음식점인 무진기행에 가 쌈밥과 된장찌개, 버섯전골로 꿀맛 같은 식사를 즐긴다. 여기서 쓰는 된장 간장 등은 광이원농장에서 가져온 것.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건우는 “제일 좋아하는 치킨 다음으로 된장이 맛있다”고 했고 승우도 아빠가 떠주는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맛있는 식사 후에는 풀향기나라에서 야생화와 허브화분을 구경한 뒤 인근의 용문사를 탐방하는 것으로 ‘장 담그기 체험여행’은 끝을 맺었다.
이번 장 담그기까지 모두 5차례 팜투어(farm tour)를 주최한 62농닷컴의 다음 일정은 딸기잼 만들기. 번번이 참가신청자가 넘쳐 이번에는 매주 2회씩 장기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광이원농장' 인근엔…
양평 광이원농장을 갈 때는 음식점 무진기행과 야생화농원 풀향기나라, 용문사를 한꺼번에 둘러보는 것이 좋다.
장 담그기 실습을 할 수 있는 광이원농장에서는 유기농산물로 만든 맛좋은 된장 간장 등을 살 수도 있다. 된장 1㎏에 8000원, 간장은 0.9ℓ에 7000원. 이밖에 냄새없는 청국장, 참기름, 들기름, 은행 및 들깨가루 등을 판다.
카페 겸 음식점 무진기행(031―774―6131)은 우렁 된장찌개와 들깨를 갈아넣은 버섯전골이 일품. 케일 상추 겨자잎 등에 광이원농장에서 만든 쌈장을 곁들인 쌈밥정식(1인분 1만원)도 인기 메뉴다.
차 종류로는 들깨차 대추차 모과차 등 전통차와 커피 등이 있다. 나무기둥에 황토로 마감해 분위기도 그만. 지붕엔 깨진 옹기조각을 올려 운치를 더했다.
200여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031―771―1809)에서는 복수초 노루귀 매발톱 솜양지꽃 앵초 등 이름만 들어도 향기로운 100여종의 야생화를 구경할 수 있다. 향기요법으로 인기있는 허브화분도 이 농원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국산 허브차와 허브양초, 허브아로마 등 허브 관련제품도 괜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차를 타고 5분 남짓 가면 신라 신덕왕 2년(91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용문사에 닿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樹齡) 1100년의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이 260㎡나 된다.
◇'맛있는 장' 이렇게
광이원농장 김광자 원장이 이날 학생들에게 소개한 장 담그기 비법 몇 가지. ▽우리 콩으로 시기를 잘 맞춰라〓수입콩은 입맛에 맞지 않고 된장만들기도 힘들다. 11월에 메주를 쒀석달을 띄웠다가 음력 정월, 2월에장을 담근다. 전통적으로 장은 12간지에서 말, 범, 소 등 털 달린 짐승날담그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
▽물과 햇빛이 중요하다〓항아리는 입이 넓은 것으로 준비한다. 그래야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 메주를 넣은 뒤 붓는 소금물은생수나 암반수를 쓴다. 수돗물은 약기운이 있어서인지 장맛이 ‘먹을 수 없을 정도’.
▽햇빛이 보약이다〓매일 아침에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가 해가 지면 닫아 햇빛을 충분히 볼 수 있게해야 한다. 항아리에는 보자기를 씌워준다. 틈이 넓은 망보자기는 피한다. 자칫 먼지나 벌레 유충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 공기가 통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흰색 천이 위생상 좋다.
▽자식 기르듯 돌봐야 한다〓담근뒤 50∼60일이 지나면 숯 고추 대추는 건져내고 체에 밭친다. 간장은 빠져나가고 된장이 남는데 된장을 맛있게 하려면 메주를 한 덩어리 남겨놨다가 부숴서 섞어준다. 최소한 된장은 1년, 간장은 3년을 숙성시켜야 제맛.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