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것이 정말 그의 사상과 연관이 있다면, 좋든 싫든 그 연관성이 지금까지도 미칠 영향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10년 넘게 하이데거를 연구해오며 최근 저서 ‘하이데거와 나치즘’(문예출판사)을 내놓은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프랑스 철학의 열풍 뒤에는 하이데거가 있음을 지적한다. 프랑스 철학 뿐 아니라 하버마스나 마르쿠제 등의 비판이론, 가다머의 해석학 뒤에도 하이데거의 그림자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치즘이 기술문명의 폐해와 기술중심의 전체주의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치에 참여할 당시만 해도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이 금방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꼽히는 하이데거.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총장 시절 그는 연설과 글을 통해 학생들이 나치 혁명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독려했던 열렬한 나치주의자였다.
히틀러가 나치 혁명은 완성됐다고 말했을 때조차 하이데거는 “진정한 나치 혁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나치 혁명의 완수를 위해 헌신했다.
“하이데거는 당시 소련의 공산주의나 미국의 자본주의가 모두 자연과 인간을 기계적 부품으로 전락시켜 에너지를 쥐어짜는 기술중심적 전체주의라고 보고 이를 비판했습니다. 그의 사유는 민족공동체주의적이고, 반자유민주주의적이며, 농촌지향적이고, 기술문명에 비판적이었어요. 나치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 표방했던 구호가 바로 하이데거의 이런 입장과 일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치는 곧 소련이나 미국과 다를 바 없는 전체주의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에 실망한 하이데거는 나치에 등을 돌리고 나치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하이데거의 사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다만 나치가 기술중심적 문명을 극복하리라 믿었던 기대가 무너지자, 기술문명을 서구문명사에서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겁니다.”
기대가 좌절된 하이데거는 사람들이 역사의 운명으로 다가온 이 기술문명 속에서 고통과 좌절을 경험해야 다시 자연과 인간의 친밀감 등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경쟁으로 인한 개인간 집단간 분열, 기술적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소모품화, 공동체 및 자연의 중요성 등에 대한 하이데거의 통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466쪽 1만80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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