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서태지의 컴백으로 한참 불붙었던 ‘서태지 열풍’이 다소 가라앉은 듯 하다. 이미 6집 앨범의 라이브 콘서트가 화려한 막을 내린 지 벌써 두달이 지났다. 이제 그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 듯 하다.
그간 외국의 여러 음악비평사이트에서 호평을 받고 일본의 비주얼 록그룹 ‘글레이’(glay)와 합동공연을 추진하는 등 더욱 부산한 움직임으로 세계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그간 서태지관련 책만 해도 10권이 넘게 출간되었고, 관련 칼럼과 평론 또한 셀 수 없을 만큼 쓰여졌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서태지 문화사랑회’ 등을 중심으로 ‘서태지학(學)’연구가 한창이다. 비슷한 모토로 ‘서태지와 문화경영학’등 다양한 서태지팬클럽이 서태지를 중심에 두고 대중문화, 문화산업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대중문화의 체계적 분석이 기대된다.
이에 최근 <서태지 담론>이라는 책에서 서태지가 생산해낸 문화적 의미와 우리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대중문화평론가 김현섭님과 서태지, 대중문화, 팬클럽 등에 관해 인터뷰를 했다.
《김현섭씨는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잡지사 기자, 영어교사, 번역가, 가수매니저, 만화대본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영국 런던시티대학에서 예술평론을 전공, 97년 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태지 담론>은 이 논문의 한국어판을 양적,질적으로 보완해 99년 출간했다가 2000년 서태지 6집 발표 이후 4분의 1 가량을 다시 보완해 재출간한 것이다. 그는 현재 각종 매체에 평론을 게재하고 있고 가수 신효범, 홍정명씨 등이 부른 2001한국방문의해 기념 주제곡 ‘Feeling Korea’를 작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그간의 과정은.
영국은 대중문화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 발전돼 있어 시도했고 서태지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유학 전 서태지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그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연구할 수 있었다. 준비하는 데 수 개월, 쓰는데 두 달이 걸렸다.
▼이 책은 서태지 노래가사를 주텍스트로 삼아 서태지라는 인간과 그의 음악, 당시의 사회문화적 변화 등의 시대적 상황을 해석했는데, 노래가사도 함축적, 상징적으로 사회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다른 가수들의 노래가사도 그럴 수 있다고 보는가.
다른 가수라도 그 곡을 직접 썼다면 충분히 가능하다(실제로 그의 책에는 윤종신, 015B, 신해철의 노래가사도 차용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노래는 작사 작곡 편곡 등이 분리돼 있고 가수는 노래를 부를 뿐이다. 같은 노래라도 다른 가수가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태지에게는 대중문화의 전제조건인 대중의 호응이 있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가 있고 그런 서태지가 썼기 때문에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번 6집앨범에 수록된 노래 가사의 경우도 얼핏 듣기에는 엉망인 것 같지만 상당히 문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대경성’을 높이 평가한다(대경성에 대한 해석은 책에 나와 있다).
▼서태지 이후로 많은 가수들이 사회비판적인 가사로 노래를 불렀다. 그중 몇몇 가수들은 서태지 인기에 못지 않았지만 그 메시지들은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떠한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집중도와 인기의 차이라고 본다. 그 가수들도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지만 문화적 대표성을 가지지 못했다. 인기가 있었던 다른 몇몇 가수들에게는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없고 ‘쇼맨십’만 있다. 여기서 서태지의 천재성이 빛난다. 그는 ‘난 알아요’ ‘하여가’ 등의 대중적인 노래로 인기를 확보해 대표성을 확보한 후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최근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인해 팬클럽이 상당히 조직적, 체계적으로 발전된 것같다. 과거 소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생산된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아닌, 대중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체적인 입장에 서있다. 일례로 '서태지문화사랑회'의 경우 ‘서태지학’ ‘서태지를 세계로’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며 문화사업을 하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지만 반면에 그 반대상황도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다. 최근 한 TV 시사프로그램에 따르면 팬클럽 간부들이 회원들을 상대로 수익사업을 해 상당한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경우도 있고 집단이기주의도 팽배해지는 것 같다. 이런 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팬들의 극성은 지금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치열했다. 과거 나훈아팬과 남진팬끼리의 칼부림사건등 지금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네트워크화, 조직화되면서 좀더 공격적인 성향을 띠 것같다. 서태지문화사랑회의 경우 구성원들의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높고, 서태지라는 특수성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팬클럽이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는 시대적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서태지담론>에서는 서태지의 매니지먼트, 이미지메이킹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특히 서태지 스스로가 자신을 매니지먼트했다는 게 주 이유인 듯 싶다. 그러나 최근 매니지먼트 산업이 상당히 확장되고 있는데, 여러 잡음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이러한 기업들이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진시키고 해외에 수출하려는 노력을 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매니지먼트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대중문화를 활성화시킨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매니지먼트 기업들은 일본의 20~30년간의 관습을 답습한 것이다. 연예인들을 '제조'하고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노래는 립싱크하게 한다. 이러한 풍토에서 기업은 성장할지 모르나, 가수는 발전할 수 없다.
▼문민정부 출범, 신세대 성장 등 당시의 다양한 시대적 변화와 서태지가 상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 확대해석은 아닌가. 서태지가 "자신은 음악을 할 뿐"이라고 밝힌 바 있듯이 대중들도 단순히 그의 음악, 또는 이미지 등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대중은 인기스타와 사회적 상황과의 상관관계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지 않는가.
대중문화는 사회와 연결짓지 않고 논할 수 없다. 대중문화는 대중이 수용을 해야 존재한다. 개방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매를 할 수 있는 수요가 있어야 뮤지션이 힘을 얻을 수 있다. 수요자층은 그 시대와 사회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크게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서태지는 당시의 시대적 변화에 잘 편승했는데, 이것은 그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는 변화의 선봉의 위치에 서있다. 그와 같은 72년생은 수도 없이 많지만, 신세대의 대표성을 대중문화에 어필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표현이 예술인의 고유권리이듯이 해석은 평론인의 고유권한이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은 비판자의 몫이다. 어떠한 평론에 있어 모든 사람이 수긍할 필요는 없다. 평론은 계도가 아니다.
끝으로 그는 서태지의 음악을 즐겨 들으나 서태지팬이 아니며 만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를 모델로 대중문화를 연구한 것은 그가 대표성을 갖기 때문이며, 서태지팬이었다면 연구가 객관성을 잃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말투에서 배어나는 자유로운 사고는 서태지를 닮아 있었다. 서태지를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대중문화의 현상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다양하게 전개되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수영/양성일 <동아닷컴 e포터> elf1052@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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