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활동 아내에 열등감, 순간적 손찌검 별거까지
속내 털어놓고 대화로 풀어
윤철수씨(가명)와 정희주씨(가명·여)는 42세의 동갑내기 부부다. 둘 다 최고 명문대를 졸업했다.
이들은 캠퍼스 커플이었다. 10여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윤씨는 대기업 엔지니어, 정씨는 청소년 단체에서 상근하다시피하며 자원봉사를 한다. 서울 강남의 40평대 아파트, 중형 승용차가 말해주듯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모범적이고 단란한 가정이지만 이들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년 전 정씨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서였다.
“지도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권하셨어. 공부를 더 할래.”
“굳이 그럴 필요가 뭐 있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이들의 대화는 평범하게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견차가 심해졌다. 여자는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남자는 내가 버는 걸로 충분한 데 왜 사회활동을 하려 하느냐며 반대했다.
말다툼을 하던 어느 날 윤씨는 아내를 심하게 때렸다. 정씨가 친정에 머물면서 3개월간 별거가 시작됐다. 정씨는 이혼을 생각했으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윤씨 역시 한순간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기 싫었다. 이들을 아는 목사 한 분이 두 사람과 차례차례 얘기를 나눴다. 대학시절부터 아내의 성적이 훨씬 좋고 성격이 적극적이어서 내심 열등감이 심했다고 윤씨는 털어놓았다. 정씨는 남편의 폭행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목사는 윤씨가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아내를 바라보고 그녀 만의 세계를 인정하라고 권유했다. 정씨에겐 오랜 기간 말못하던 남편의 고민을 전해줬다.
이들 부부는 목사 앞에서 약속했다.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릴 때는 상대방과 합의에 이를 때까지 대화하되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을 나가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남편의 직장생활과 아내의 학업을 연도별로 함께 점검하면서 나중에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이래서 헤어졌어요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 밖으로만 겉도는 아내
불신의 벽 못넘고 남남으로
모 기업체의 전산실장 윤석인씨(41·가명)는 요즘 13세 된 아들과 함께 노모(64)를 모시고 산다. 97년 10월 13년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 3년은 같은 집에서 살았다고는 해도 실질적 이혼상태였다.
아내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도박하는 데 점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까지 생겨났다. “언제부터 어긋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부부가 아이 낳고 가정의 틀을 깨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심하며 살아가죠. 그런 틀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내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저의 무관심한 탓이 컸을 겁니다.”
싸움이 늘고 무관심의 벽이 두꺼워지면서 아이도 불안해하는 듯했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보다는 갈라서는 게 아이 교육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혼이 결정된 뒤 그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던 노모의 집으로 들어갔다.
“헤어진 아내로부터는 가끔 연락도 오고 아이를 보고 싶어하면 하룻밤씩 재우게도 하고 합니다. 저와는 남남이지만 아이 엄마인 것은 분명하니까요.”
다행히 아이도 밝고 건강하게 커주는 편이다. “ 세월이 지나다보면 회한이 남죠.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듭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안 되더군요.”
돌이켜보면 너무 이른 결혼이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젊은 시절 아니었던가. 그래서 더욱 재혼을 서두를 생각이 없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람에게 안 맞는 제도라는 말에 공감하는 편이에요. 헤어진 아내에 대해서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지만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혼자들은 이혼 뒤 1년 정도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이혼에 따른 패배감과 자책감 소외감 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이다. 그는 이 시간을 뛰어넘기 위해 하이텔 이혼자 동아리인 ‘이혼후기’에 가입해 활력을 얻었다.
아직 이혼자를 보는 눈이 곱지 않고 사회적 배려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흔히 쓰는 신상명세서에 보면 기혼과 미혼 두 가지 난밖에 없습니다. 저는 미혼에 동그라미 치고 가족란에 아들 하나라고 적습니다만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낸 이혼한 친구들이 가정환경조사서 때문에 충격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이혼에 이른 사람들은 그대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위해 이혼을 택했겠지만 “이혼은 가능하면 피해야 할 일”이라고 ‘선배’들은 충고한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