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 철학에 대한 또 하나의 평가’라는 부제의 이 저서는 일제시대부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체계적인 철학 작업을 해온 열암이 왜 박정희 정권에 참여해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데 나서게 됐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인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는 “열암은 역사성과 사회성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통해 차분히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지 않고 열정적인 성급함에 따라 또 하나 잘못된 역사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즉 광복 이후 민족 빈곤의 시대에 ‘비약’과 ‘개조’와 ‘창조’라는 개념에 매달린 나머지 끊임없이 ‘건설하는 힘의 철학’을 추구했고, 여기에 의욕이 앞서 군사독재에까지 협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현실 인식보다 우리 민족이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결과였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열암이 관념적 추상적 연구에 머물지 않고 한국적 현실 속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려 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한다. 그는 “열암이 시도했던 철학과 현실의 종합, 전통과 현대의 종합, 동양과 서양의 종합은 현재 우리 철학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좌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서울대 출신 학자들 사이에서 최근 열암이 우상화될 정도로 높게 평가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 “열암의 철학이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서울대 출신이 아닌 내가 재조명 작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연구서를 통해 열암을 재조명하고 그에 대한 기존의 평가까지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故 박종홍교수는 누구인가
1903년 평양에서 출생해 1932년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교수를 거쳐 1946∼1968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정년퇴임 후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도산서원 원장, 대통령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특히 ‘국민교육헌장’의 기초위원으로 유신체제 이념을 정당화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주요 저서로 ‘일반논리학’ ‘인식논리학’ ‘현실과 구상’ ‘한국의 사상적 방향’ ‘한국사상사’ 등이 있다. 1998년 그의 저서들이 ‘박종홍전집’(전7권)으로 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