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광고지 뒤덮인 담장 새싹들 꿈을 담는 '화폭'으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거세던 98년 3월. 영세한 공단지역인 경기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부천신흥초등학교에 부임한 윤재국교사(37)의 눈에 비친 학교는 ‘부실 그 자체’였다.
인근 변전소의 고압전선을 피해 북향으로 지어진 학교는 13년만에 50년은 족히 지났을 정도로 낡아 보였다.
학교의 회색 담장에는 낯뜨거운 사진이 실린 카바레 광고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담장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선 악취가 풍겼다. 학교 옆 외진 공터는 중고교생들이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탈선지역’이었다.
◇3년전부터 벽화그리기
37학급 1600여명의 학생을 길러내는 학교로서 부끄러운 환경이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더 나은 환경을 바랐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급식비를 못 낸 학생이 많아 종종 학교 급식이 중단될 위기를 맞을 정도로 재정상태가 열악했기 때문.
윤교사를 비롯한 몇 명의 교사가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이 ‘벽화 그리기 운동’을 제안하면서 학교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교감이던 유재욱교장도 적극 지원했다.
어린이들과 교사가 함께 붓을 들고 학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라고 의아해하던 학생들이 의외로 재미를 붙였다.
◇학부모-주민도 솜씨자랑
바깥 담장에 그림을 그릴 때는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붓을 잡고 서투른 솜씨를 뽐내며 즐거워했다. 담장을 차지했던 광고 전단과 낙서, 쓰레기 더미 대신 울긋불긋한 그림이 사람들을 맞았다.
교문 옆 외진 공터와 건물 뒤편 공터에 메밀 상추 고추 벼 등 교과서에 실린 농작물을 심고 닭과 오리를 기르는 사육장도 만들었다. 부모들의 정성도 곁들여졌다.
4학년 때 벽화그리기에 참여했던 강승연양(12·6년)은 “친구들과 함께 내가 직접 꾸민 내 학교라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무척 기분이 좋다”고 자랑했다.
◇공터엔 텃밭 사육장
학부모 등 지역 주민들도 자녀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건져낸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 학교를 찾은 구청장은 무척 달라진 학교를 보며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힘을 합쳐 학교 환경을 가꾸면서 학생들은 학교를 사랑하게 됐고 지역 사회도 밝아지게 된 것이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