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청학계곡에 봄눈 구경 가세"

  • 입력 2001년 3월 7일 19시 06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데…,

그예 장대 봄비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춘설로 변하고야 말았다.

섬진강변 매화가지에 꽃봉오리 움트고

지리산 고로쇠 고목에서 달콤한 수액

솟아 오르니 제 아무리 춘설이 퍼 붓는다

한 들 오는 봄이 어디로 가겠는가.

겨울과 봄이 한데 뒤섞여 봄속의 겨울,

겨울속의 봄 풍경이 펼쳐진

지리산 청학동 계곡으로 찾아간다.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너르다는 악양땅(경남 하동군) 지나 하동읍으로 가는 길. 금빛 모래 수려한 섬진강변 햇볕 따사로운 강둑의 매화 가지에서 연분홍 매화가 여린 꽃잎을 펼쳤다. 아직 다른 꽃나무는 고운 털 소담스러운 겨울 옷을 바짝 여미고 있는데.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어쩌려고….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19번 국도에서 만난 하동. 여기서 2번국도(마산 진주 방향)로 올라섰다. 이어 횡천면에서 좌회전, 지리산 삼신봉 아래 계곡을 흘러 내리는 횡천강(1003번 지방도로)을 거슬러 따라 찾아든 깊은 계곡. 어찌된 영문인지 계곡은 오르면 오를수록 땅도 하늘도 넓어만 가니 희한하기만 하다. 예가 바로 ‘삼재팔난 불입지(三災八難 不入地)’라 불리고 신라말 최치원선생이 거처하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청학동(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그 은둔의 계곡 아닌가.

계곡 끼고 달리기를 20여분. 23㎞ 산길 포장도로는 해발 850m의 계곡 상단, 청학동 마을 입구에서 사라졌다. 가파른 산비탈에 기대어 댓잎(竹葉) 꺾어 지붕 이은 작은 초막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계곡. 사람들은 아직도 상투 틀고 댕기 매고 우리 한복차림으로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속세 풍진이 잦아들며 마을은 상전벽해(桑田碧海)식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 오래. 단정하게 올린 양옥풍 상점이며 널찍한 주차장까지 갖춘 대형서당, 그리고 식당 찻집 간판 등등.

방학이면 며칠씩 묵으며 서당교육 받는 학생만 수천명, 연간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었다니 오히려 이 정도 변모를 다행스럽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 그렇긴 해도 소박한 산골 오지마을만 상상하고 ‘도인촌’을 찾은 사람들은 마을 초입에서 대뜸 ‘산골처녀 영자’의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서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직도 도시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투박 질박 소탈한 산중의 삶이 또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주민은 26가구에 180명 정도. 대문이 따로 없는 초옥에 머리를 디밀고 들여다 보니 대청마루 기둥에는 ‘입춘대길’등 휘호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아래 디딤돌에는 고무신과 털신도 놓여 있다. 대나무통 안에 쌀을 넣고 찐 대롱밥과 댓잎냉면, 지리산 산나물을 올린 산채비빔밥, 죽통에 오미자를 우려 담아둔 술 등등 산중별미도 다양하다.

산아래 섬진강변에서는 꽃노래가 들릴 법한 이 즈음도 산골짝 청학동에서는 아직 눈 쓸어낼 빗자루 몇 개쯤은 더 장만해 두어야 할 정도. 장대 봄비가 내리던 주말 청학동에는 새벽녘 비가 눈으로 변해 아침 계곡에는 설국이 들어섰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란 묘한 것. 고로쇠나무 가지에 눈꽃이 피어도 줄기에서는 봄기운 생생한 달콤한 수액이 퐁퐁 솟는다. 청학동의 봄소식은 꽃보다 빠른 고로쇠 수액이 가져다 주는 듯하다. 마을사람들은 지난달 26일부터 당도가 높아 설탕 탔다는 오해까지 받는 해발 1000m 이상 고지에서 채취한 청학동 고로쇠물을 알리는 ‘골리수(骨利樹) 약수제’를 열면서 산골마을의 봄을 도회에 알리고 있다. 올해는 20ℓ들이 한 통에 4만5000원. 문의 청학동 골리수 공동판매소(대표 이성구·054―883―8140)

인성 기르기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서당이 대안교육의 한 수단으로 인기를 끌면서 청학동에는 서당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문을 연 ‘지리산 청학동 서당연수원’(원장 최기영)은 청학동에서는 유일한 사단법인(비영리) 체제. 이 마을에 하나뿐인 전통서당의 맥을 이어온 청학서당 지킴이 이학규씨(대표 훈장)등 훈장 11명이 운영한다. 이들은 새로 지은 널찍한 서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숙식하며 몸사랑공부(전통놀이) 사람사랑 참살이공부(예절인성교육) 글얼깨침(사자소학 서예)을 지도한다. 1일(1만2000원)∼3박4일(6만2000원)체험, 2주연수 등 다양. △인터넷 www.chunghak.net △전화 055―884―5975∼6

△손수운전〓①서울∼대전∼전주∼남원∼구례∼하동(6,7시간)∼횡천면 ②부산∼남해고속도로∼진주∼횡천면(2시간반) ③대구∼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진주∼횡천면(3시간) △대중교통〓진주, 하동↔청학동 직행버스 이용(출발/시외버스터미널)〈표 참조〉

승우여행사(02―720―8311)는 섬진강 매화마을 혹은 산수유마을, 금산 보리암도 들르는 ‘청학동 도인촌’ 무박2일 상품을 판매중. www.seungwoo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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