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서적 불법복제]대학가 "누가 비싼 원본교재 쓰나"

  • 입력 2001년 3월 11일 18시 53분


새 학기를 맞아 대학가 복사점들이 강의 교재와 학술서적들을 무더기로 불법 복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단법인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가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관련 단체와 함께 2∼8일 수도권 지역 대학가 복사점 240여군데를 기습 점검한 결과, 업소 당 5∼100권의 불법 복사물들을 적발했다.

이번 점검 과정에서 적발된 서적은 250종 1006권에 이르며 이 가운데 국내 서적이 절반을 차지해 더욱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과거 학술서적의 불법복사는 외국원서가 대부분이었으나 국내 서적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불법 복제는 ‘환경공학개론’ ‘재무관리’ ‘한자사전’ ‘영문법 개론’등 학술서적 전반에 걸쳐 이뤄지고 있었다.

복사전송권관리센터측은 적발된 복사점 가운데 대량으로 복사물을 제작한 60곳을 형사 고발할 계획이다. 99년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서적 등 저작물을 무단 복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같은 불법 복사로 인해 국내 학술도서 출판사들은 존폐를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보고서 ‘도서 불법 복사·복제 실태’는 교재 복사본으로 인한 이들의 총 손실이 연간 840만권 1500억원 어치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지방대학에 500명이 수강한 교재로 채택된 한 출판사의 ‘재무제표’는 4만원짜리 정품이 단 2권만 팔렸고 대다수 학생이 1만원에 단체로 복사본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 지난달말에는 S대 부설 외국어교육원이 링구아포럼 출판사의 토플문제집을 고스란히 복사, 수강생들에게 판매하다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현재 대학가 복사 비용은 쪽당 25∼30원 정도로, 불법 복사품은 정가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복사와 제본기술이 발전해 책의 외양과 인쇄 품질에서 원본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대학 수업에서 교재의 일부 내용만 사용하는 점도 학생들의 불법 복사 유혹을 뿌리치게 어렵게 한다.

아울러 도서의 무단 복제가 중대한 범법행위라는 인식이 결여돼 있어 불법복제가 만연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외서(外書)의 경우 불법 복제가 여전하자 최근 미국출판협회가 직접 우리나라에 담당자를 파견, 실사를 벌인 뒤 외국 영어교재 3만여권을 불법 복제 판매해온 한신문화사 대표를 고발하기도 했다.

최성균 복사전송권관리센터 사무국장은 “저작권 침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앞으로는 교재 복사를 의뢰한 교수나 학생, 교내 복사점의 불법 복사를 용인한 대학측에 대해서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욱상 한국학술도서출판협의회 회장은 “교재 판매량이 크게 줄자 해당 출판사는 제작비를 회수하려고 책값을 높게 책정해 불법 복제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란?〓책 등의 저작권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저작자 및 출판 관련단체가 만든 문화관광부 산하 사단법인. 저작 출판업자를 대신해 저작물을 복사하려는 이용자와 저작권 복사 계약을 체결하고 저작권 사용료를 받아 분배한다. 합법적인 저작물 복사 이용을 위해 복사점과 책 분량의 10%까지 발췌해 복사 제본을 하도록 허용하고 장 당 5원의 사용료를 받는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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