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만 해도 한국학 연구자는 무척 외로웠어요. 50년대에는 한국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지요. 제가 한국을 연구하겠다고 하자 지도교수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충고했지요.”
3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그는 네덜란드 라이덴대에서 중국사와 일본문학을 연구하면서 동아시아 지역학에 입문했다. 그가 한국학 연구에 본격 뛰어든 것은 하버드대의 래드클리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하바드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은 19세기 말 한국의 개항에 관한 논문.
“학위 취득 후 1년간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에서 귀한 자료를 접한 게 저한테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 때 한국의 역사 문학 지리 문화 외교사 등 무한한 연구 분야가 널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는 1977년 ‘조선왕조시대의 여성’, 1980년 ‘한국의 음악’, 1997년 ‘18세기 조선의 사회와 경제 발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 관련 논문을 썼다.
“중국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의 문화권을 형성하면서도 제사와 같은 의례를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게 지키는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일까 궁금했어요. 저는 고려말 조선초의 성리학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민중 생활까지 깊숙이 침투한 성리학으로 인해 모계(母系)와 부계(父系)가 공존하는 고려의 쌍계사회에서 조선의 부계 사회로 옮겨가는 사회적 변동이 일어났고, 이어 상속제 조상숭배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 그는 요즘 17∼18세기의 양반사회를 안동 남원 등 지방의 관점에서 비교 연구하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