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아줌마]그녀에겐 '삶의 향기'가 있다

  • 입력 2001년 3월 11일 18시 56분


꽃이라곤 장미밖에 몰랐던 임씨에게 ‘꽃집 여주인’으로의 ‘변신’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처음엔 꽃 이름조차 제대로 몰라 손님의 질문에 쪽지를 ‘커닝’하며 식은땀을 흘리기 일쑤였습니다.”

동네 꽃가게와 달리 상가내 200여개의 다른 가게처럼 도소매를 겸하다 보니 늦은 밤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이어지는 고된 일과도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은 경매가 시작되는 밤 10시반, 임씨도 오전 2시면 가게로 향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개업 일주일만에 ‘도저히 못하겠다’며 투정부리는 날 다독이느라 남편이 혼났죠.”

‘조금만 더 참자’고 자신을 추스르며 버틴 결과 지금은 하루 평균 200여명의 손님들을 상대로 꽃 고르는 요령부터 예쁜 꽃꽂이 방법까지 능숙하게 알려줄 정도로 ‘베테랑 꽃집 아줌마’가 됐다.

초보 시절 임씨가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 오전 2시경 문을 열자마자 가게로 ‘쳐들어온’ 20대 후반의 한 남자 손님은 임신한 아내에게 줄 장미 100송이가 담긴 꽃바구니를 만들어 달라고 보챘다. 한창 ‘돈이 되는’ 도매손님을 맞을 시간인데다 꽃꽂이에 자신도 없었지만 젊은 남편의 ‘갸륵한 정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1시간 넘게 진땀을 흘리며 어설프게 만든 꽃바구니를 받고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발하며 어둠 속을 뛰어가던 손님의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오더군요.”

에피소드 둘.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가게를 찾는 예순이 훨씬 넘은 한 단골 노부부.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황혼기’에도 꽃을 고르는 내내 잡은 두 손을 놓지 않는 두 사람의 다정한 얼굴을 볼 때마다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아직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그 분들을 보며 꽃보다 진한 삶의 향기를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하고요.”

요즘 대부분의 꽃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계절을 별로 안 타지만 봄철은 아무래도 장미, 프리지어, 튤립, 안개꽃 등 생화를 찾기 마련. 또 1년초 분화(화분에 심은 꽃)인 시네라리아, 주리안, 마르고데스 등도 수요가 꾸준하다.

가격은 생화의 경우 1단인 10∼20송이를 기준으로 3000∼1만원선, 분화는 1500∼1만원선. 양재화훼공판장을 비롯, 강남 꽃도매상가나 남대문 꽃상가를 찾으면 시중보다 20∼30% 싸게 싱싱한 꽃을 구입할 수 있다. 임씨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해마다 수십여종의 신품종이 쏟아지고 있다”며 “인터넷 온라인판매 등 도매상가도 일반 고객들이 보다 손쉽게 꽃을 구입할 수 있도록 변신 중”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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