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인 6명의 탄생 100주년에 부쳐

  • 입력 2001년 3월 12일 18시 42분


◇가신 임들 삶과 문학 우리가 구명해야

한국 근대문학에 굵은 획을 그은 6명의 문인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최서해 이상화 한설야 김동환 박종화 박영희가 그들이다. 김윤식 서울대 교수(국문학)가 이들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고 그 의미를 새기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지난 세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고, 그 시련 속을 우리 나름으로 헤쳐와 오늘의 세기 앞에 섰다. 좋든 싫든 우리가 한 몸으로 두 세기를 살아가게 되어 있는 만큼 응당 이에 대한 권리와 의무 또한 뒤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권리란 무엇인가? 행사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권리의 존재방식이지만 권리 행사에서 기쁨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의무이긴 하나, 이로써 반드시 고통만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무를 다한 자에게만 권리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권리와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나 민족은 멸시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 권리와 의무가 홀대받는 시대란 궁핍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의무 사항 중의 하나를 문학 분야에서 찾아본다면 어떠할까?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겠으나, 작가들이 겪었던 지난 세기에 대한 경험적 시련을 알아보는 일도 그 중의 하나이리라.

따지고 보면 작품(사상)이란 아무리 대단해도 일종의 언어의 구축물이어서 인간과 견줄 만한 것이 못 되는 면도 있다. 주자, 퇴계, 헤겔, 맑스, 프로이트의 사상보다도 그들이 어디서 태어나 자랐으며 또 어디서 공부하고 어떻게 죽었는가에 비할 수 있으랴. 이를 실천성이라 불러도 직접성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터이다.

20세기가 시작될 즈음, 이 땅에서 태어난 6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홍염’(1927)의 작가 최서해(1월21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의 시인 이상화(4월5일), ‘황혼’(1936)의 작가 한설야(8월 3일), ‘국경의 밤’(1925)의 시인 김동환(9월21일), ‘금삼의 피’(1936)의 작가 박종화(10월 29일), 그리고 ‘월광으로 짠 병실’(1923)의 시인이자 평론가 박영희(12월20일) 등이 그들이다.

혹은 함경북도 눈고장에서, 혹은 함경남도의 항구에서, 또는 달성공원이 있는 영남땅에서, 혹은 5백년의 도읍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또 태어날 땐 다만 발가벗은 아이였지만, 어째서 그들은 한결같이 문학을 필생의 사업으로 선택했을까.

그들이 이 땅에서 숨쉬기 시작할 때 조국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 있었고, 철날 무렵 님은 침묵하고 말지 않았던가. 하늘, 아비, 이른바 공적 개념이 부재하던 시대 속에서 이 아이들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허덕여 마지 않았다. 상실감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울림, 그것이 소월시이며 단재의 ‘꿈하늘’이었을 터이다.

빼앗긴 들엔 봄이 오지 말아야 했고, 국경의 밤은 건너지 말아야 했고, 금삼의 피의 기억은 회고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님이 침묵하던 시대를 그들은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했던가. 문학을 선택했을 때 그들을 제일 괴롭힌 것은 무엇이며 또 그들이 가장 아파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아니,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문학을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어떤 가문 출신이며 어디서 배웠고 누구와 친했고 어떤 가정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들의 작품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금년은 21세기가 시작되는 원년이다. 이들 6명의 탄생 백주년에 해당되는 해이기도 하다. 자연인으로서 이들에 대한 백주년 기념은 후손들의 몫이리라. 평가의 차이는 없을 수 없겠으나, 이들이 공적(公的)인 문학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지 않은가. 이들의 삶과 문학을 알아보는 일이 우리의 권리로 되는 이유가 여기에서 온다. 만일 권리 행사가 기쁨을 동반한다면 그것은 의무를 행한 뒤에야 겨우 찾아올 것이다.

김윤식(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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