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보는 세상]탈레반의 '닫힌 종교'

  • 입력 2001년 3월 13일 18시 56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집권세력인 탈레반이 행한 불상 파괴가 전세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탈레반의 대변인과 유네스코의 대변인이 나누는 가상 토론을 통해 불상 파괴를 막을 방도가 없었는지 생각해 보자.

▽유네스코〓불상 파괴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파괴 행위다. 중지하기 바란다.

▽탈레반〓불상은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다. 우리의 종교적 믿음을 어지럽히는 우상일 뿐이다. 당신들이 사악했던 독재자의 동상을 밧줄로 잡아당겨 넘어뜨리듯이, 우리는 이교도의 상징인 부처의 동상을 미사일로 파괴하는 것이다.

▽유〓부처는 사악한 독재자와는 다르지 않은가?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자비와 사랑을 전파하지 않았는가?

▽탈〓보편적 가치란 없다. 보편적 가치를 위장해 다른 민족을 억누르려고 했던 것이 서구 제국주의 문명의 전형적 수법이다.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가치는 이슬람적 가치이며, 그 가치 수행에 저해가 되는 불상은 파괴돼야 한다.

▽유〓그렇다 치더라도 불상을 파괴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저 이미지로 남아 있을 뿐인 불상이 당신들의 현실에 무슨 악영향을 끼치겠는가? 그냥 놓아두어도 당신들이 추구하는 사회 구축을 방해하지 않을 허상의 이미지일 뿐이다.

▽탈〓그렇지 않다. 당신들의 21세기 문명은 이미지가 현실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상의 이미지가 위해하다고 판단될 경우, 당신들은 당신들의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검열을 시행하고 과감히 삭제해 버린다. 위해한 이미지는 사라져야 한다.

▽유〓불상이 당신들 사회에 그토록 위해하다면, 차라리 우리에게 넘겨달라. 우리가 박물관 등의 적절한 장소로 옮겨 보관하도록 하겠다.

▽탈〓그럴 수 없다. 우리가 파괴하는 것이나 당신들의 박물관에 가두어 놓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수많은 이슬람의 유산들이 보호라는 명목으로 우리 삶의 터전에서 이역만리 박물관의 감옥으로 이송됐다.

토론은 결렬됐다. 대부분의 불상들이 파괴됐다. 탈레반을 설득하기에는 문화재에 대한 인류 역사의 과거가 너무 어둡다. 탐험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다른 문화들을 파괴하거나 멸시했던 과거가 그리 멀지 않다. 새로운 국가관과 가치관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훼손시켜 버린 문화재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지 않다.

과거가 현재를 옭아매서는 역사가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풍속과 다른 풍속, 자신의 마음과 다른 마음, 자신의 사상과 다른 사상이 상호 공존하고 존중받는 습관이 일상화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문화재의 파괴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타인의 기본적 권리를 훼손하지 않는 한, ‘다름’은 용인돼야 한다. 그리고 탈레반의 ‘다름’은 타인의 종교적 권리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금지돼야 한다.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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