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생선, 100년 이상된 골동품 카메라와 시계부품 등이 투명한 레진 상자에 박제품처럼 담겨 있는 전시품들. 관람객은 미술작품 전시장이 아니라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설치작가 이진용(40)의 ‘서기 3001년의 나에게 보내는 소포’전이 15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린다. 추억 속의 각종 물건들을 나무 상자 안에 넣고 그 위에 액체상태의 레진을 부은 후 경화제(硬化劑)를 넣어 딱딱하게 굳힌 뒤 이를 사포로 갈고 왁스 칠을 해 만든 유물(遺物) 같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현재의 그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기념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타임캡슐 성격을 지닌다.
“각종 오브제들을 화석화시켜 시간 속에 가두는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작품들은 열과 압력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변형되거나 부패될 우려가 없습니다. 후대의 고고학자들이 이를 화석처럼 발견해 21세기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할 수도 있겠죠.”
이씨는 지난 10년 동안 이같은 레진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이 작품들로 개인전만도 10회나 열었다.
“외국에 한번 나가면 골동품가게나 벼룩시장을 뒤져 잡동사니들을 한 상자씩 사들여옵니다. 이 사물들이 저에게 어떤 인연이 있어 걸어 오는 것이지요. 애정이 가는 이 물건들을 상자 속에 넣어 잘 다듬어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작품들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전시는 주로 바이올린 비올라 등 골동품 악기들을 해체한 오브제들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식물과 생선 등으로 오브제의 범위가 넓어졌고, 작품 색깔도 훨씬 다양해졌다. 10년 동안 작업을 해오는 동안 최근 화학약품으로 많은 색깔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그의 작품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90년대 이후 1년에 6회 이상의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해온 그는 올 1월 미국 ‘아트 팜비치’에 나가 5점의 작품들을 팔았으며, 2월에는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한 화랑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그는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 작업실을 갖고 있다. 온갖 물건들이 들어차 있는 박물관 창고 같은 이 곳에서 그는 하루 15시간 동안 독한 화학약품과 씨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작업이 끝난 뒤 광안리 작업실에서 해운대 집까지 1시간 동안 해변에서 조깅을 하며 독성물질을 바람에 씻어낸다. 그가 바닷가에 사는 이유다. 02―549―7574∼6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