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대가 도래하면 한 개인의 정체성과 기존의 성적 관행을 180도 바꿔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골치 아프게 상대를 위해 배려할 필요도 없고 비싼 돈 들여 이성의 환심을 살 필요도 없다. 섹스 상대의 몸이 피곤한지 그렇지 않은지, 눈치 살필 이유도 없다.
사이버 섹스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비단 요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미 30여년 전 미국은 ‘인터섹스 프로젝트’란 명칭의 사이버 섹스 실험을 일본 도쿄대에서 실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해외 주둔 미군들에게 성병의 위험 없이 시뮬레이션화된 섹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 실험에서 특기할 점은 여성 지원자들의 성적 반응을 비디오-오디오 테이프로 원격 기록해 실험대상 남성을 위한 시청각적인 자극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들의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많은 작업들이 실험에 동원됐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결혼제도를 심각하게 위협하며 가상공간에서의 난잡한 성행위를 엄청나게 확대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이 뒤늦게 지적되면서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1970년대에는 ‘텔리딜도닉스’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제안되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는 ‘필리수트’란 옷을 입고 사이버 섹스를 하는데, 필리수트에는 촉각 센서들이 휘감겨 있으며 가상의 물체와 신체를 만지고 그것들의 표면조직을 진짜처럼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이 달려 있다. 여기에다 원격조종되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하여 일종의 대리 섹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
최근 스탠퍼드 대학에서는 ‘바이오 뮤즈’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뇌와 근육의 전기 신호들을 이용해 성적 기쁨을 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사이버 섹스가 현실로 등장한다면 요즘 우리가 즐기는 섹스 테크닉은 그야말로 일종의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섹스마저 기계와 같이 한다는 것은 왠지 우울하다. 서로의 감성과 신뢰가 오가며 즐기는 섹스, 배우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기초가 된 섹스. 바로 이런 것이 21세기에도 불변할 진정한 섹스의 덕목이 아닐까.
<강경훈/ 합동비뇨기과 원장 tcf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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