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선의 나침반'

  • 입력 2001년 3월 16일 19시 06분


◇'선의 나침반' 저자 현각스님 인터뷰

“책 표지가 아주 멋지죠?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세련된 디자인입니다. 굿!”

막 배달된 ‘선의 나침반’ 번역서를 받아 든 현각(玄覺·38) 스님은 우선 표지가 맘에 든다며 좋아했다. 불교 입문서지만 다른 여느 책들과 다름없이 보이고 싶었던 맘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 행로를 바꿔놓은 숭산(崇山·75) 큰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이 ‘특별한 책’에 쏟은 그의 정성을 짐작할 만하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99년)에서 밝혔듯이 83학번인 폴 뮌젠(현각의 속명)은 우리의 386세대처럼 80년대 미국에서 정치 시위에 참여했던 철학도였다. “이렇게 성난 얼굴로 살아야 하는가”라며 삶에 회의를 갖고 있던 그는 90년 ‘생불(生佛)’로 존경받던 숭산 스님의 강연에서 ‘베리타스’(Veritas·진리)를 발견하는 충격을 받았다.

“숭산 스승님 말씀 듣고 한국에서 스님하겠다고 졸랐어요. 스승님은 얼마나 준비됐느냐고 물으셨습니다. 90%라고 대답 했더니 100% 될 때까지 기다려라 하셨습니다.”

이 책은 ‘깊은 깨달음’(玄覺)을 얻으려 정진했던 기다림의 소산이다. 법계를 받기 전 ‘미스터 하버드’로 불리던 벽안의 불교도는 4년간 스승의 법문을 녹취하며 정리해 이 책을 엮었다.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고자 혼신을 기울였던 이 책은 미국에서 97년 발간돼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불서(佛書)와는 아주 다른 책입니다. 스승님 말씀처럼 형식을 따지지 않고, 어렵거나 일상생활과 동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저 같은 미국인 뿐 아니라 서구식 합리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한국 젊은이들도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현각이 ‘혁명적’이라고 말하는 숭산 스님의 업적은 서양인에게는 신비로운 종교로만 알려져 있던 불교를 일상생활에서 ‘선(禪)의 혁명’으로 끌어들인 점이다. 급작스런 세계화로 전통을 잃은 채 허무적인 쾌락에 경도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도 의미있는 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책은 ‘불교를 믿어라’는 전도서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어떻게 자기 내면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도와주는 파트너지요. 무슨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자기 존재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현각 스님은 요즘 사람들이 참다운 종교가 뭔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무작정 감동을 주는 설교나 법문만 따라가는 것은 올바른 종교가 아니며, 오히려 ‘정신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읽되 집착하면 안됩니다. 펜 그 자체는 도움을 줄 수 없고 그것으로 글을 써야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나침반’도 일상생활에서 쓸 때만 자기 삶을 혁신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선의 나침반 1,2

“무심(無心)을 깨닫고, 공(空)을 깨닫고…. 먼저 깨달음을 얻을 것.”

서울 수유리 화계사의 숭산스님.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추앙받고 있는 유명한 스님이다. 이 책은 불교와 선(禪)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가 외국인들을 상대로 설법해온 내용을 미국인 제자 현각스님이 영어로 정리해 엮었고, 그걸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불교 개설서다. 이론 중심이 아니라 사례 중심이어서, 훨씬 더 많은 깨우침을 준다. 실은, 큰스님이 전해주는 ‘삶의 나침반’이다.

숭산스님은 대승 소승 선불교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불교를 설명한다. 소승불교는 우리네 삶이란 것이 늘 변하는 고통임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대승불교는 공(空)을 깨닫고 대자대비를 실천하는 것. 즉 나를 넘어 다른 생명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수박을 놓고 소승 대승 선을 설명한다.

소승의 경우. ‘검은 씨에서 가지가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열매는 푸른빛을 띠고… 속은 빨갛고 검은 씨가 박혀 있다… 이것을 다시 땅에 심으면 뿌리가 생기고 싹이 터 꽃이 피고….’ 진리를 보는 관점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설명이다.

대승의 경우. ‘수박은 푸른 껍질과 검은 줄을 갖고 있고 약간 무겁다. 서양인은 럭비공을 연상하고 한국인은 축구공을 연상할 것이다. 속은 부드럽고 달지만 겉은 딱딱하고….’ 진리를 보는 관점이 공간, 즉 모양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선은 어떠한가? ‘여기 있다, 먹어라’다. 단순 명쾌하지만 심오하다.

숭산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참선이다. 삶은 무지를 깨닫는 것이고,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 핵심은 참선 수행이다. 수행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허공처럼 청정한 마음, 언어 이전의 마음, 즉 무심을 깨닫는 것이 선이다. 참선 수행을 통해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타자를 위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말들도 많이 등장한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차나 마셔라”, “부처님을 언급하는 것조차 머리에 똥을 넣은 것과 같다” 등.

하지만 수박을 먹어보는 것이 중요하듯, 선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가 아닌가. 선을 말하는 순간 그건 이미 선이 아니다. 큰 스님의 당부. “이 책을 읽되 말에 집착하지 말라.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라.”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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