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후지 가히로 지음 노재현 옮김 302쪽 9700원 참솔
세상이 변했다,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 등속의 광범위한 어휘가 변화의 실체를 막막하게 휘감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정보로 수집하려는 개인적 욕망, 그것에 발맞추고 싶어하는 개인적 노력도 부질없다. 전인적인 인간형은 오히려 도태되어 간다. 한 가지 재능과 특기가 오히려 주목받는 세상 아닌가.
파상적인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민한 적응보다 체념과 푸념, 개탄과 저주의 언사를 훨씬 많이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 자살 사이트 회원들이 동반 자살을 하고, 전교 일등을 하는 여중생이 원조 교제를 하고, 폭발물 사이트에 게시된 방법으로 사제 폭발물이 만들어진다. 어쩌란 것인가.
세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심리 구조 사이에 엄청난 갭이 생겼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것을 위해 인간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자신을 지배해온 모든 정신적 시스템과 싸워야 한다. 요컨대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현명한 이기주의’는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지배해 온 모든 가치관을 재검토한다. 현대 사회의 가치 붕괴와 목적 상실을 인간의 본성을 통해 가차없이 까발리기 위해서다. 인간이란 어차피 이기적 존재라는 걸 전제하고 인간에게 유전자처럼 배어 있는 허위의식을 해부하는 것이다. 명쾌하고, 통쾌하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하다.
“겉보기에 이기적인 사람의 배후에는 이기성 밖에 없다. 겉보기에 이타적인 사람의 배후에도 역시 이기성 밖에 없다. 결국 우리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기적이다”라고 저자는 적시한다. 이기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포스트모럴리즘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기존의 모든 계율과 종파, 이념과 사상을 배격하고 철저한 적자생존의 중도적 이기성을 강조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도덕감각이 DNA에든 신경회로에든 마치 붙박이장처럼 장치돼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실체를 가리고, 그것이 허위의식의 일상화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고, 자신을 위해 현명하게 사는 것이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현명한 이기주의자는 알고 있다. 계율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즐겁고, 이기적으로 간주되는 행위도 태연하게 실천하고, 마찬가지로 보답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운 이타적 행위를 담담하게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명쾌하면서도 풍요로운 책을 읽었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잡은 책에서 인간을 자유자재로 칼질하고, 명쾌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쾌저(快著)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세상사는 방법에 관해 묻는다면 거침없이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자기 처세술을 터득함은 물론 세상을 보는 안목까지 얻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박 상 우(소설가/‘99 이상문학상 수상)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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