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文化의 속성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들게 마련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무관심한 경우로 이 때 流入의 속도는 느리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속도도 빨라질 뿐만 아니라 자국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커진다. 반면 人爲的(인위적)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방법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 세 가지 경우가 모두 다 있었다. 그 적극적인 수입방법 중의 하나가 留學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文化大國 中國과 이웃해 있었다. 그래서 초기 傍觀者(방관자)적인 입장에서 후기에 오면 적극적으로 수입하게 되는데 三國 중 新羅가 특히 그러했다. 三國史記에 보면 眞德女王 2년(648)에 金春秋가 唐나라에 가서 服式制度를 구했는데 金富軾(김부식)은 그것을 ‘以夷易華’(이이역화·中華의 風俗으로 오랑캐의 그것을 代替함)라고 표현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留學시대가 열려 新羅의 儒學僧(승)이나 留學生이 唐나라에 많이 갔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근대 이후에도 초기 留學의 주 대상국은 中國이었다. 개항에 따른 武備自强(무비자강·스스로 무력을 갖추어 강국이 됨)을 목적으로 김윤식 어윤중 등과 같은 개화파가 중국에 가서 서구문물과 병기를 받아들였다. 그러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 체결 이후부터는 바뀌어 박영효나 김옥균 등은 日本으로 학생을 留學시켰으며 서재필 유길준 등은 美國을 택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커져 渡美(도미) 留學生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80년대 들어오면 보편화되면서 미국 이외에도 유럽 등으로 다양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와 留學이 유행병처럼 성행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초등학생, 유치원생의 早期留學바람까지 불었다. 앞선 외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우리의 留學열기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敎育에 대한 不信이다. 지금 교육의 기반이 崩壞(붕괴)되고 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 뿐이 아니다. 遊學生도 많아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바야흐로 敎育에 대한 획기적인 처방이 시급하다. 본디 교육은 ‘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았던가?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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