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카데미 시상식이 부러운 이유

  • 입력 2001년 3월 18일 18시 40분


1주일 뒤면 할리우드 최대 행사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부러웠던 건 그 규모나 영향력, 화려한 진행이 아니었다. 영화인들은 상을 받든 안받든 파티에 가듯 즐거운 표정으로 참석해 서로 축하해준다. 수상 후보가 불참하는 경우란 상상하기 어렵다. 원로 영화인이 무대에 오르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한다는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왜 저런 게 안될까. 수상자로 호명해도 자리에 없는 후보들, 썰렁한 객석, 허울좋은 간판에 불과한 ‘대표성’….

그러나 올해부터는 달라질지 모르겠다.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가 함께 대종상 영화제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다음달 20일부터 엿새간 ‘대종상 영화제’를 통합행사로 연다.

‘통합’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른바 ‘구세대’이자 ‘보수세력’인 영화인협회가 주최하는 대종상과 ‘신세대’이자 ‘진보세력’으로 불리는 영화인회의가 주최하는 한국영화축제를 대종상 하나로 합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 단체가 영화진흥위원회 설립 때부터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점을 생각하면, 반가운 첫걸음이다. 흥겨운 축제만큼 묵은 앙금을 툭툭 털어낼 계기도 흔치 않으니까.

1961년 제정된 대종상은 작품상을 받은 제작사에 외화 수입 특혜가 주어지던 85년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이후에도 공정성 시비가 혹처럼 붙어다녔다. 게다가 후원기업 부도로 98년에는 행사조차 갖지 못하는 내우외환을 겪은 뒤 99년 재개됐지만 수상자들이 시상식장에 대거 불참해 썰렁한 분위기를 면치 못했다.

또 영화인회의가 “대종상과는 다른 영화제를 하겠다”며 지난해말 연 한국영화축제도 ‘축제’라 하기엔 너무 초라한 자축파티로 끝나고 말았다.

올해 대종상은 시상식만 치르던 이전과 달리 한국영화축제의 성격을 대폭 수용해 4일간의 출품작 상영회 등을 연다. 한 집행위원은 “모처럼 함께 모인 자리를 해치지 않으려고 신, 구세대 영화인들이 모두 조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전 제작지원 대상작 선정을 둘러싼 잡음을 비롯해 신,구세대의 반목은 아직도 뿌리깊다. 대종상 공동 주최로 그 깊은 갈등이 일거에 사라질리야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