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봄호 '한국의 王' 집중분석

  • 입력 2001년 3월 18일 18시 40분


드라마 ‘태조 왕건’ 때문인지, 요즘 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왕이나 왕권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의외로 많지 않다. 최근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가 ‘왕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기획 특집을 마련해 관심을 모은다.

이 특집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왕조별 왕권의 특징과 차이점을 비교해 흥미롭다. 김기흥 건국대 교수가 ‘삼국시대의 왕’, 김기덕 건국대 강사가 ‘고려시대의 왕’, 오종록 고려대 교수가 ‘조선시대의 왕’에 대한 논문을 수록했다.

김기흥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삼국시대 왕은 영웅적이다. 고려와 조선의 왕이 개성이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데 비해 삼국시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김교수의 설명이다. 주변 세력과의 경쟁이 치열했던 시대였기에 개척자적이고 투사적인 영웅상이 요청됐다.

고구려의 광개토왕 장수왕,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 등이 대표적 인물. 김 교수는 “특히 근초고왕은 한강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사로잡히자 구구한 변명 없이 목을 내밀어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웅의 비장함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고려시대의 왕에 대해 논문을 발표한 김기덕씨는 고려시대 왕과 왕권의 특징은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군주의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앙이 나타나고 그로인해 왕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대체로 재앙이 나타난 뒤 왕이 반성하는 절차를 거친다. 즉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반성이 강조되는 것.

고려말엔 성리학이 들어와 성리학적 군주수신론(君主修身論)이 자리잡았다. 이는 잘못된 일이 벌어지기 전 왕이 미리 성인처럼 수신하라는 것으로, 천인합일사상과 달리 사전 예방을 강조한 것이다. 이 군주수신론은 조선시대 왕권의 주요 특징이 된다. 고려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왕을 분석한 오종록교수에 따르면 고려 왕들은 별다른 제약이 없었으나 조선의 왕들은 군주수신론 때문에 ‘사전 예방’이라는 틀에 갇혀 행동의 제약을 받았다. 조선시대의 왕들, 특히 16∼17세기 왕들이 마음대로 궁궐 밖을 나가지 못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조선시대 왕 25명(대한제국의 고종 순종 제외)의 평균 재위기간은 19년. 고려보다 5년 길다. 이는 고려보다 왕권이 안정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산군 시대를 지나 17세기에 이르러 왕권의 위상이 급격이 변해갔다. 17세기 이후, 왕실은 그저 좋은 사대부 가문 정도의 위상이었고, 왕은 그 대표자에 불과한 존재였다는 것이 오 교수의 견해다.

1897년에는 대한제국이 탄생했다. 그 헌법인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엔 ‘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향유한다’는 등 무시무시한 황제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교수는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실질적인 위상의 약화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