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는 야오비쿠니라는 정체불명의 800살 노파로부터 몸 속에 '혈선충'을 이식받고 불사의 몸이 돼버린 사내다. 뜻하지 않게 여동생의 눈앞에서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여동생마저 미쳐버린 집안사를 지니고 있다. 여동생의 남편을 포함, 100인을 살해한 속죄의 뜻으로 1000명의 악인을 베겠다고 결심한 만지는 여동생을 닮은 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의 복수를 돕게 되는데….
복수심에 불타는 어린 소녀와 그 소녀의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빼어난 실력의 검객이라니 숱하게 본 뻔한 설정 아닌가? 남자 주인공은 불사의 몸이라며 잘려 나갔던 팔도 다시 붙기 일쑤고 책 한권에서 서너명씩은 우습게 죽어 나가는 처참한 만화 <무한의 주인>. 아무리 사무라이 시대라지만 죽음이 일상의 도처에 널려 있고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행복은 고사하고 살아 남는 것조차 힘에 부쳐 보이는 피곤하고 지친 눈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의 주인>은 매력적인 시대물이다. 현재 일본 최고의 그림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히로아키 사무라 특유의 거칠면서도 세밀한 연필화 기법과 먹으로 묘사되는 정교한 장면 하나 하나는 생동감과 역동감으로 터질 듯하다. 특히 처절하게 펼쳐지는 격투의 현장은 평면에 흑백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인데도 보는 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미학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물론 단순히 그림만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큰 흐름은 간단 명료한 복수극이지만 세부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관계, 심리 등은 치밀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작품 전반에 걸친 분위기나 인물들의 정서 역시 절제미가 있다. 다만 우리네 정서에 비추어 지나치게 잔혹한 묘사와 표현을 서슴지 않아 때때로 보기 끔찍할 정도라는 것과 짧은 순간 장면들의 극적 긴장감에 비해 작품 전반적인 이야기 몰입도는 떨어지는게 흠이라면 흠이겠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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