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9년간 침묵 털고 새장편 낸 작가 이용범

  • 입력 2001년 3월 19일 19시 04분


◇"순애보 통해 한국적 정서 담았죠"

198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는 두 명의 후보자가 올랐다. ‘겨울 우화’를 응모한 신경숙과 ‘유형의 아침’을 낸 이용범(사진)이었다.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모두 1963년 1월 12일생인데다 생시(生時)까지 같았다는 사실.

심사결과 이용범의 작품이 당선작에, 신경숙의 작품이 준당선작으로 결정됐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크게 달랐다. 신경숙의 작품들은 시간이 갈수록 주목받았던 반면, 이용범의 창작집 ‘그 겨울의 일지’나 장편소설 ‘얼음꽃’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에 대해 문단 호사가들은 우스갯소리로 “신경숙이 이용범이 갖고 있던 사주(四柱)의 문운(文運)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고 말하곤 했다.

소설을 접고 9년간 침묵했던 이용범이 최근 새 장편소설 ‘열 한번째 사과나무’(생각의 나무)를 내놨다.

이 작품은 열 다섯살 때 전학온 마을 유지의 딸 상은을 짝사랑하는 주인공 ‘나’의 20년 가까운 순애보를 다뤘다. 16세 식목일에 10년 후 꺼내보기로 약속하고 사과나무 아래 묻어둔 두 사람의 편지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어긋나기만 하던 ‘나’의 짝사랑은 훗날 임종을 앞둔 상은과의 짧은 해후로 이뤄진다.

어찌보면 평범한 멜러 이야기이지만 작가 특유의 미려한 문체와 섬세한 감수성에 힘입어 그리 진부하지만은 않다. 대중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완성도가 높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데뷔 초창기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온 작가가 이같은 대중소설로 급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80년대 후반 민족문학의 리얼리즘과 순수문학의 모더니즘의 균형감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비속한 대중문학과 고상한 본격문학의 줄타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나 조창인의 ‘가시고기’ 등 다양한 대중소설을 연구한 그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문장과 문체.

“문장에 신경을 쓴 것은 한편으론 대중소설이 갖는 통속적인 에피소드의 유치함을 덜어내려는 노력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정서를 최대한 살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창작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문학성을 얼마나 희생하고 대중성을 얼마나 얻을 것인가 하는 심리적 저울질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순수문학 진영에서 대중문학으로 변신한 ‘중간문학’의 시도를 독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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