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의 김근수씨. 그는 최근에 임원급으로 승진했다. 그것도 누구나 다 바라는 아주 알짜배기 자리로. 무엇보다 그의 성실성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그러나 승진발표가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병원을 찾아왔다. 잠을 잘 못 자고 하루에도 몇번씩 숨이 턱턱 막히면서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망설이던 그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승진 발표가 나는 순간 어지러워 거의 쓰러질 뻔했다고. 기쁘고 행복해서? 아니었다.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우습게 들리고 이해하기도 어렵겠지만 사실은 승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말이었다. “차라리 사표 쓰고 나가서 평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가족이고 친구들이고 날 미쳤다고 하겠지요?”
설마? 싶지만 이런 예는 생각보다 흔하다. 샐러리맨에게 가장 큰 성공은 승승장구 승진해 임원이 되고, 언젠가는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꿈꿀 때와 막상 그 자리에 앉았을 때의 간격은 지구와 별나라만큼이나 멀다. 윗자리에 있으면 누리는 권력이 크지만 책임도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요즘 사회풍조가 어떤가? 윗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초고속으로 업적을 남기기를 바라는 세상 아닌가. 그러니 승진한다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누구한테도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다. 배부르니까 별 호사스러운 타령을 다 한다고 면박이나 받는 게 고작일 테니까.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 두려움과 불안이 뇌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자극해 김근수씨와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마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김근수씨처럼 성실하고 완벽주의자들이 더 괴로워한다. 이런 타입은 명령을 수행하는 일에서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맡은 일만 완벽하고 성실하게 끝내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윗자리에 앉아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실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원칙적인 일은 잘해내지만 사고의 유연성과 통합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안 그런 척 버티다가 마침내 더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 때문에 고생스러운가? 그럴 때는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용기도 필요하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