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땅이든 어디든 거기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게 시인의 임무이기를 나는 바란다. 갈아탄 항공편의 연착으로 현지 시간 새벽 2시가 지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는데 그 오밤중까지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온 시인 몇 사람은 구내 카페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이름 만큼이나 이름난 남아공 소잉카의 백발이 먼저 눈에 띠었다. 지난 겨울 폴란드 시인대회에서 어울렸던 아일랜드의 시머스 히니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불참했다.
하지만 미국 원로시인 펠렝게티가 1m80의 장신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잔뜩 그리고 있었다. 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을 이끌었던 시인, 시집이 100만부가 팔린 사람이지만 그는 언제나 소년이었다. 영국의 시인 긴즈버그와 미국의 시인 스나이더는 30년대 인도를 방황했는데, 그는 80대 후반인 지금에야 인도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 밖에 하버드 초빙시인 그레이엄도 눈빛이 형형했다.
이렇듯이 시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도 잠들지 않고 있었다. 지난 시대 내내 세계의 숙직자였고 세상의 고뇌를 대행했던 시인들의 그 처연한 자취가 아직껏 지워지지 않은 것인가?
유네스코 본부는 ‘세계 시인의 날’ 행사를 매혹적으로 선도하면서 이번에는 그리스 정부와의 제휴로 세계 시인의 신탁적(神託的)인 축제를 베풀고 있다.
이번 행사는 시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인간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하나의 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헬리콘 산 기슭의 목동 헤시오도스가 올림포스의 시신(詩神)들로부터 신의 소리를 받아 시인이 된 땅, 세상을 볼 수 없는 장님이지만 누구보다 세상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시의 아버지 호메로스의 땅에서 시인들의 잔치는 최선의 것이었다.
아테네와 델피신전, 그리고 올림피아 세 군데를 전전하면서 각국어 시 낭독, 오늘의 시가 가는 길, 시와 민족문제, 시와 국제화, 시와 사이버를 주제로 하는 토론, 죽은 시인들에 대한 추념, 그리고 푸슈킨에서 브로드스키까지 러시아의 시인들에 대한 특별행사 등이 이어져 31개국에서 참가한 34명의 시인들은 쉴 참이 없었다.
여전히 서구 시인이 중심이었고, 아시아에서는 인도 중국 한국에서 한 명씩의 시인이 참가했다. 그 동안 몇 차례 시인대회마다 중국 대표는 망명시인이기 십상이었는데 이번에는 본토에서 참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두 가지를 되새겼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설적인 현상이야말로 신의 보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절호의 행운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시를 기존의 상투적 존재 이유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고대 이래 시 정신을 파급시켜야 할 과제가 그것이다. 시는 본질적으로 ‘오래된 새로운 노래’이고 새로운 소식이기 때문이다.
고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