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

  • 입력 2001년 3월 23일 19시 13분


◇국제금융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

이리유카바 최 지음/413쪽/ 1만원/해냄

역사적 대격변 직후면 으레 등장하는 이론이 있다. 음모론이다. 이러저러한 정황 증거들을 나름의 기법으로 엮어 만들어진 ‘설’은 대개 좌중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 마련이며, 전해들은 이는 반드시 자신의 해석을 곁들여 이 ‘설’의 무의식적 전파자로 나선다.

이리유카바 최가 펴낸 이 책도 크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저자 자신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가 완전히 왜곡된 사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스스로 이 책의 주제를 “자본가들이 어떻게 정치를 농락하고 있는가”라고 밝히고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농락당하는 대상은 대다수 전세계 민중이며, 농락하는 주체는 ‘환전꾼’과 ‘금융엘리트’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금융 카르텔’의 정점에 이들, 즉 영국계의 로스차일드 가와 미국계의 록펠러 가를 핵심으로 하는 엘리트가 있고, 그 아래에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있고 그 휘하에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을 위시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있다고 한다.

책의 1부에서 저자는 특히 로스차일드 가를 위주로 이들 국제금융가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한다. 그래서 미국독립전쟁, 남북전쟁, 링컨암살, 1차대전, 러시아혁명, 세계대공황, 2차대전, 심지어 케네디 암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들 ‘환전꾼’들의 음모가 작동했고, 또 정치인들이 어떻게 이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는지 보여준다. 분명 과도한 문제설정이지만 재미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카지노 자본주의’라 불리는 현대의 국제금융시스템을 비판하는 대목에 이르면 나름의 구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우리 모두의 숨통을 조인 구호가 하나 있다. ‘BIS(국제결제은행) 8%!’ 이로 인해 수많은 은행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사실 사금융기관에 불과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모여 구성된 BIS는 1988년 모든 은행이 1992년까지 자본금을 늘려 총융자액의 최소 8%를 지급준비금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쉽게 말해 수중에 80만원만 준비되어 있으면 1000만원까지 대출할 수 있다는 말이다. 920만원은 있지도 않은 돈이고, 은행은 금리가 10%라면 이자로 100만원을 거둬들인다.

바로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금융기관들은 대출금을 회수하고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자사주를 헐값에 매도한다.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해 IMF나 세계은행이 자금을 지원하지만, 지원된 자금은 경제 재건이 아니라 이자를 지불하는 데 사용되고, 그 과실은 고스란히 ‘환전꾼’의 몫이 된다. 그래서 제3세계의 이런 실정을 두고 브라질의 한 경제학자는 “3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 이번 전쟁은 제3세계가 진 부채에 대한 전쟁이며, 이 전쟁의 주무기는 원자탄보다도 무섭고 레이저 광선보다 더 큰 파괴력을 지닌 ‘이자’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제금융자본의 이러한 ‘농간’에 대한 필자의 지적은 IMF, 세계은행, 다자간투자협정(MAI), 세계무역기구(WTO)에까지 확장된다.

한·미, 한·일, 한·칠레간 투자협정(BIT) 및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밀실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설사 이 모든 것이 국제금융투기꾼의 ‘음모’ 때문은 아니라 할 지라도, 아마 이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점에서 살펴봄직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엄격한 의미의 학술 연구자가 아닌 탓에 부분 부분 논리적 비약과 개념적 애매함이 눈에 띄긴 하지만, 흥미로운 신자유주의 비판(비난)서로 읽혔다.

이해영(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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