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한 덴마의 인생. 순식간에 출세에서 멀어져 초라해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새도 없이 덴마의 인생은 이미 급류를 타버린듯 급격하게 또 다른 반전을 맞는다. 하룻밤새 병원의 중심 세력이던 병원장과 외과부장, 덴마의 뒤를 이은 외과 레지던트 치프 모두가 의문의 독살을 당한 것. 마치 예견된 것처럼 새로이 병원을 장악한 이사장은 덴마를 외과부장에 임명한다.
그로부터 9 년 후, 유력병원의 외과부장이라는 중책에 있으면서도 사심 없는 성실한 의사로 살아가던 덴마는 병원장들의 독살사건 와중에 실종되어 버린 요한과 우연찮게 조우하게 된다. 병원장들 독살사건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중년부부 살해사건의 범인이 자신임을 밝힌 요한은 태연하게 미소지으며 덴마의 눈앞에서 사람을 쏘아 죽인다. '나는 그때, 죽었어야 했다. 선생이 나를 살려낸 거야.'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의사의 본분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던 소년이 몬스터임을 알게된 덴마는 절망하며 그를 살려낸 책임을 지기 위해 요한의 행적을 뒤쫓기 시작하는데….
마치 수천 조각의 직소 퍼즐을 차례차례 끼워 맞춰 나가는 듯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호러 스릴러 <몬스터>는 완벽한 구성과 폭풍처럼 휘물아치는 극적 전개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보기드문 걸작이다. 구 동독의 고아원 511킨더하임에서 인간병기로 교육받은 요한은 악마의 화신같은 존재로 뛰어난 지능과 카리스마를 이용해 현실세계에까지 교묘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그 오싹한 통찰력과 섬뜩한 잔혹성,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드러내보이는 인간 내면의 악마적 본성과 유약함은 무엇이 진정한 공포인지를 알게하는 것이다.
<몬스터>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운명처럼 필연처럼 혹은 끝을 알수 없는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수십, 수백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다. 자신 안에 깃든 악마를 괴로워하는 이중적 존재 요한, 살인자 누명을 쓰고서도 필사적으로 요한을 뒤쫓는 덴마, 양부모가 요한에게 살해당하면서 그의 존재를 기억해 낸 요한의 쌍둥이 여동생 니나, 덴마를 살인자로 확신하고 있는 독일연방경찰의 룽게 경부.
이들 넷을 중심으로 간단명료하게 펼쳐지던 이야기는 갈수록 거미줄처럼 미묘하고 섬세하게 그 범위와 영역을 넓혀 여러 사람에게 파장을 미친다. 마치 현실처럼 치밀한 이 유기적 관계들은 작가 고유의 휴머니즘과 인생 철학을 녹여낸 것이어서 극적 긴장감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일등공신 역활을 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15권에 이르러 그동안 수 없이 암시되고 반복되던 복선들의 실체가 조금씩 벗겨지는 듯하다. 니나의 어그러진 기억이 보여준 진실은 무엇이며 요한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덴마가 자신의 힘으로 살려낸 요한을 다시 한 번 자신의 힘으로 소멸시키게 될 때 과연 진정한 선과 악은 어느 쪽이게 될까. <몬스터>가 펼쳐내는 가슴 저미는 진짜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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