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까지 서울대 수석 입학생은 늘 집안이 가난했다. 과외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교과서만을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다. 라디오 심야방송을 벗삼아 지냈으며, 새벽녘 두부장사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 낙(樂)이라고 했다. 어느 해인가 수석 입학생에게 가난해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이 주어졌다. 그의 대답은 “가난은 불행하거나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였다.
가난에 대한 정의가 그렇다면, 부유하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행복하거나, 떳떳하거나, 심지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편리할 뿐이다’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부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그저 소비에 있어서 편리하고 불편한 차이를 지니고 있을 뿐일까? 어린 시절 지녔던 그 의문은 전설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을 접하면서 풀렸다.
그녀는 “사치의 반대는 가난이 아니라 비천함이다”라고 주장했다. 가난한 것과 부유한 것은 분명 반대의 개념이다. 그런데 가난하다고 해서 비천한 것이 아니고, 부유하다고 해서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사치스럽게 행동할 수 있으며, 부유한 사람들도 통속적이고 비천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논지이다.
코코 샤넬을 만나게 해 준 책. 바로 독일의 대표적 유행분석가이자 소비 및 시장문제 전문가인 보스하르트가 지은 ‘소비의 미래’이다.
이 책은 저자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줄기차게 연구해온 소비분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21세기에는 소비가 어떻게 변화할 지를 갈파한다. 사치, 컬트소비, 오락, 감성, 테마 및 메시지, 소비자 독해력, 미디어 독해력 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이를 기반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를 전망한다. 코코 샤넬도 그의 전망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등장했다. 물론 수 많은 조연 중의 하나였다.
미래의 소비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 정도를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펼치지 않는 편이 낫다. 역으로, 미래의 시장동향, 소비 트렌드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구입해서’ 읽어야 한다. 한 번 보고 덮을 수 있는 책은 굳이 살 필요가 없다.
어떤 책은 요약본만도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그려진다. 곱씹을수록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 오랜만에 만났다.
신현암(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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