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내고향의봄-신경숙

  •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43분


◇폭삭폭삭 밟히는 땅이 "겨울 끝" 알려

내 태생지의 봄은 신발 밑에 밟히는 땅의 느낌으로 왔다. 겨우내 꽝꽝 얼어있던 땅이 어느 날 폭삭폭삭하게 밟히면 그것이 봄이었다. 아직 얼어있는 개울이나 묘지 근처에 버들개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겨우내 기척이 없던 다리 밑 움막 속에서 거렁뱅이들이 나와 냇가에서 세수를 하기 시작할 즈음이면 진달래나 생강나무 따위에도 물이 오르고, 어느새 꽃을 확확 피어 올려 걷잡을 수 없게 되곤 했다. 어떤 혹독한 겨울 끝이라도 그러했다.

큰 눈이 사나흘씩 퍼붓는 일이 허다한 고장이라 이 집이나 저 집이나 겨울을 나고 나면 지붕 한쪽이 못쓰게 되곤 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지붕이 종내엔 허물어져 내리기 일쑤였다. 봄이면 꽃을 보는 것보다도 먼저 이 집 저 집서 지붕 고치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지붕을 고친 아버지들이 겨우내 홀로 두었던 들판의 해충들을 소탕하느라 봄 불을 놓으러 나가면 어머니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눈이 내리고 쌓이고 녹고 했던 뒤뜰의 장 항아리들을 씻어내곤 했다. 쫙―쫙― 맑은 물을 퍼부어 씻어낸 뒤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항아리를 닦아주는걸 보고 있으면 내 몸에 때도 씻기는 듯했다.

집집의 누나나 언니들은 이 방 저 방 방문을 활짝활짝 열어 젖혀 봄바람이 드나들게 했다. “춥단 말야”―소리를 지르지만 팔뚝이나 뺨에 와 닿는 쌔한 바람결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환기시켜주었다.

오빠들은 처마로 떨어지는 낙수가 대문바깥으로 잘 흘러나가도록 괭이로 고랑을 파 물길을 내주었는데 그 고랑을 타고 잘잘 흘러가는 봄 낙수소리를 방안에 배를 깔고 엎드려 물고구마 따위를 까먹으며 듣고 있을라치면 자올자올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다.

여자 꼬마치들은 연장 통에서 대못을 하나씩 꺼내 철길로 가서는 레일 위에 대못을 얹어놓고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땐 왜 그리 칼이 귀했는지. 집집마다 부엌칼 외에는 과도조차 따로 없었던 것 같다. 부엌칼을 함부로 쓰다간 어머니한테 혼쭐나기 마련이었다.

나물을 캐고 싶은데 칼이 없으니 궁리 끝에 못 칼을 만들려고 레일 위에 대못을 올려놓고 둑 뒤로 도망가 기차를 기다리곤 했다.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 잽싸게 달려가 보면 거짓말같게도 레일 위에 못이 납작해져 있었다. 머리 부분을 손잡이로 해서 종일 나물을 찾아 쏘다니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못자리를 하려고 광에서 종자를 끌어와 물에 담그고 어머니가 읍내에 나가서 병아리 쉰 마리, 오리 스무 마리쯤을 사와 마당에 풀어놓을 때쯤이면 봄이 다 온 것이었다.

산길에 들길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마당이고 고샅이고 들판이고 봄바람이 일렁이고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면 어른이나 아이나 제 할 일을 하느라고 왔다갔다하고 시끄럽고 부산했다. 진정한 의미로서 한 해의 시작은 이 때부터였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허둥거리고 있는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인사치레로라도 좋아 보이네, 하면 욕같이 들린다. 어디 아프지도 않고 견디고 있는 게 때로 신기할 지경이다.

그래도 고향을 생각하면 비록 병과 함께이더라도 아직 거기에 내 부모가 그 마을 안의 그 집을 지키며 살고 계시다는 것이, 아직 그 집에 내 어려서 들여다보던 우물이 꽃밭 옆에 가만히 놓여있다는 것이 꿈결같다. 어느 때보다 바람 세고 눈 많은 겨울을 그 마을도 통과해 왔겠지. 지금쯤 사방에서 꽃망울이 툭툭 터지고 있겠지. 누군가는 종잇장 같은 진달래를 꺾어와 소주병에 꽂아 마루에 두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미 들판으로 나가 봄 불을 놓고들 있을 게다.

신경숙(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