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댄스' 들어보셨나요?…직장인 등 수강열풍

  • 입력 2001년 4월 9일 19시 21분


《지난 금요일 오후 10시 서울 압구정동의 한 건물 지하. 빨간색 주황색이 교차되는 현란한 사이키 조명 아래 코요테의 ‘파란’과 차태현의 ‘I Love You’가 귀청이 터질 듯 흘러나온다. 젊은 여성들은 이내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기 시작,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서로의 몸짓을 의식하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 앞 옆 뒤에 박혀 있는 전신거울을 향해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자아도취’에 빠져들 뿐이다.》

시간대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나이트클럽’에서나 볼 수 있던 상황이 최근 ‘댄스 학원’의 낯익은 풍경이 됐다. 강좌 이름은 ‘나이트 댄스’ 혹은 ‘실전 백댄서 춤’. 특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는 최근 한달 새 4곳의 댄스클럽이 새로 생기는 등 로데오거리 부근에만 10여곳의 업소가 몰려 ‘댄스 학원가’를 형성하고 있다. 신장개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갤러리아 백화점 부근에서 압구정역까지 어지럽게 붙어 있다. ‘여성전용’을 표방하며 ‘몸매를 디자인하세요’ ‘낯을 가리는 여성들만 오세요’ 같은 유인문구를 붙여 놓은 곳도 상당수.

재즈나 힙합댄스는 이미 ‘고전’축에 든 기본형이다. 음악의 박자감이 좀 더 잘 표현되는 살사 라틴 댄스, ‘열병에 걸린 듯’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피버(Fever) 댄스’가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다이어트용 댄스프로그램’을 따로 고안해 운동량을 늘려주는 곳도 있다. 에어로빅과 재즈 댄스를 섞어 놓은 ‘팻 버너(지방 태우는 춤)’나 ‘셰이프 업(몸매 가꾸기 춤)’이 대표적. ‘뮤지컬 댄스’ 역시 스케일이 크고 무대 전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다. ‘나이트 댄스’는 한 달에 댄스곡 1곡씩에 대한 안무를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양각색의 직업을 갖고 있는 수강생들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탓인지 오전반 오후반을 포함, 밤 10∼11시까지 심야강습반이 개설돼 있는 곳이 많다.

회사원 박미연씨(25·LG패션)는 “스트레스 해소가 첫 번째고, 열심히 하다보면 티셔츠가 흥건히 젖을 만큼 땀이 많이 나와 살도 빠지는 게 두 번째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유흥업소를 방불케 하는 실내장식과 음향기기를 들여놓은 덕분에 재미있게 춤을 추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대한 만큼의 운동효과를 낸다는 설명. 박씨처럼 “살빼러 왔다”는 근처 빌딩의 20대 여직원과 “나이트 댄스를 시작한 이후 밤에 나이트클럽에 가도 예전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다”며 즐거워하는 대학생들이 제일 많이 눈에 띈다.

출산관리와 체형유지를 위해 뛰어든 30대 미시족, 에어로빅에서 전향한 40대 마담족, 10대 연극영화과 입시준비생도 적지 않다. 클럽에서는 대부분 반바지 티셔츠 양말을 제공한다. 하지만 개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발산하기 위해 형형색색의 반바지, 슬리브리스 쫄티, 몸에 붙는 타이츠, 워킹슈즈, 힙합바지를 입고 나와 자신만의 ‘댄스 패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더 댄스’의 곽용근 실장(33)은 댄스 열풍에 대해 “남들에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인식시키는데 있어 노래보다 더 ‘효과적인 개인기’로 통하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대학 연영과 지망생 박소현씨

“춤을 통한 진학이 가장 큰 목표지만, ‘사교의 도구’가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죠.”

몇몇 대학의 연극영화과 진학에는 ‘춤실력’도 중요한 고려대상이 된다. 박소현씨(22·대입준비생)는 원래 무용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춤을 배우고부터는 연극영화과로 목표를 수정했다. 진학에 있어서는 ‘잔재주’보다 ‘몸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평가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박씨는 기본기에 많은 연습을 할애한다.

“요즘 ‘몸치’들은 ‘음치’보다 더 못견디잖아요.”

박씨는 또 장기자랑 시간에도 댄스실력을 ‘기본기’로 요구하는 또래들의 분위기를 거론하며 “춤을 잘 추면 동료들 사이에서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친구 사귀기에도 편하다”고 말했다.

◇오페라가수 꿈꾸는 조은영씨

“훌륭한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몸이 뻣뻣하면 안되잖아요.”

춤을 배우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오페라 가수’가 꿈인 여대생 조은영씨(22·한양대 성악과3·사진)는 음에 맞춰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연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리듬감 박자감 체득에 효과적인 댄스강습을 받는다고 한다.

“처음엔 스트레칭할 때 다리근육이 땅겼는데 이젠 쫙쫙 잘 펴져요.” 조씨는 평소에 운동신경이 과히 좋지 않은 편이지만 ‘유연성’이 좋아지는 걸 몸으로 느낀다. 원래 운동을 싫어해 수업시간인 1시간 30분을 ‘어떻게 버틸까’하고 고민했지만 신나는 유행가를 몇 번 반복해 듣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라고.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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