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선물과 선불 사이

  • 입력 2001년 4월 10일 18시 58분


“눈까지 더 침침해진 걸 보면 요즘 무리했나 봐.”

전날 한식 성묘를 마치고 6일 오전 주위의 눈을 피해 회사 근처 사우나에 ‘잠입’한 영업사원 김모씨(32).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역시 피로회복엔 사우나가 최고야.”

사우나를 끝내고 몸의 물기를 닦던 김씨의 눈이 갑자기 한 곳에 고정됐다. 탈의실 한 쪽의 냉장고 위에 붙은 ‘선물로 제공합니다’라는 문구.

“허. 사우나도 생존을 위한 고객서비스가 대단하군. 역시 무한경쟁시대야.”

성큼 다가간 김씨는 냉장고 안에서 녹즙캔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사우나로 갈증난 목을 축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

“아저씨, 왜 돈도 안내고 마셔요?”

“아니 공짜로 준다고 써 붙였잖아요.”

“나 참, 아저씨 다시 보세요.”

옷장에서 안경을 꺼내 다시 문구를 들여다본 김씨. 멋쩍은 표정이 된다.

이렇게 써있었던 것이다.

‘선불로 제공합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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