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고의’가 개입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의성이 드러나면 살인죄가 적용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의학적으로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가족 등이 계속 진료를 요구할 경우 의사의 판단만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다.
▽소극적 안락사〓안락사는 환자 등의 요구에 따라 가스 주입이나 독극물 투여 등으로 숨지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등의 ‘소극적 안락사’로 나눠진다.
지침안 중 ‘환자나 가족 동의’의 경우 관행을 명문화한 것이다. 의료계에선 98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 뒤 이 같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의사들은 환자 아내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환자가 숨지자 의사들이 살인혐의로 구속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현호(申鉉昊) 변호사는 “보라매병원 사건 판결도 의사가 ‘회복 가능’한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점에서 살인혐의가 적용된 것이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한 것은 아니다”면서 “현행법은 소극적 안락사를 명쾌하게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P교수는 “무엇보다 가망 없는 환자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며 또 치료비 문제 등을 생각해도 소극적 안락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세대의대의 한 교수는 “불치병 환자는 일생 진료비의 25∼30%를 마지막 한 달 동안 쓰고 숨진다”면서 “필요 없는 의료비를 줄이는 것은 환자 가족의 권리와 의료보험 재정 확충 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회생 불가능’ 판단과 법률적 분쟁 가능성〓환자의 회생 가능성 여부에 대해 명확한 세부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면 사실상의 살인 행위 등도 이 테두리 안에서 행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2 보라매사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
기독교생명윤리단체협의회의 박상은(朴相恩) 총무는 “의사의 오판에 의해 살 수 있는 생명이 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객관적 병원윤리위원회의 설치와 명확한 세부지침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장병돈(張炳敦·37·대구 달서구 상인동)씨는 “환자측과 의료진이 모두 회복불가능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겠지만 부모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려는 자녀의 꿈을 의사 멋대로 끊겠다는 것은 우리의 정서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의협 이윤성(李允聖·서울대 의대교수) 법제이사는 “사실상 불필요한 의료행위와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환자와 가족의 동의 아래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성주·신석호기자>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