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명소다. 해질 무렵 돌담을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장면이 쉽게 눈에 띈다. 한국일보사 건너편에도 돌담이 있다. 미국 대사관 숙소를 가리고 있는 그 높고 견고한 담벼락 말이다. 그 곳을 지날 때면 괜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랑의 밀어는 커녕 주고받던 잡담마저 일순간 멈추게 될 정도이다. 담의 위압적인 모양새가 사람을 영 주눅들게 하는 것이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강홍구 지음·황금가지·2001)을 펼치면 그렇게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눈앞에 떠오른다. 일상 풍경을 담은 사진첩이라고 할까. 저자 강홍구는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읽어낸다.
▽통속적인 사물의 깊은뜻 찾아내
자동차 윈도 브러시에 끼어 있는 술집 광고, 환상을 제조 판매하는 스티커 사진기, 은폐나 변신을 위한 패션 가발, 과잉과 사치를 내보이는 뷔페 식당의 음식 장식물, 우리 시대의 거대한 벽화라 불리는 고층 아파트, 도시 경관의 필수품목인 가로수와 가로등, 그리고 플래카드 등. 저자의 표현대로 시시하고 낯익은 것들이다.
그 따위에 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분석하는가? 저자는 우리 삶 주변에서 늘 대하는 것을 다시 촘촘히 훑어보려고 한다.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배후를 들추어내려는 심사렷다.
그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본과 권력이 횡포를 부리고 우리네 달뜬 허영심과 조잡한 이미지와 가면이 진짜와 진실을 몰아내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봉투를 보듯이 슬쩍 비켜가고 싶지만 그게 우리의 참 모습이란다.
▽제대로된 시각문화 열망 담겨
저자는 자신을 이른바 ‘B급 미술가’라고 자처한다. 기존의 미술세계에 별 매력이나 의욕을 느끼지 못한 탓이리라. 해서, 미술이 아닌 듯하면서도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각문화 속에서 미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그 그림도 아름다움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 실망은, 그러나 시시한 것을 진짜 ‘아름다운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열망을 부추기며 결국 아름다움이란 제대로 잘 사는 일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올해가 ‘한국 방문의 해’라고 한다. 외국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 관광선진국이 되자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의 관광은 우리의 전략 산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런저런 관광 특구만 제정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바깥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애초 관광 자원이 빈약한 마당에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시시한 것들부터 아름다워야 한다. 이게 바로 관광문화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김성기(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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