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히 오랜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밭농사가 위주였으므로 한자 田은 ‘밭’을 의미하며 ‘논’을 뜻하는 글자는 지금도 없다. 다만 심은 작물을 가지고 구별했는데 桑田(상전)은 뽕밭, 稻田(도전)이라면 ‘논’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아는 ‘畓’(논 답)은 현명하신 우리 조상들이 만든 土種 한자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따라서 밭곡식이 위주였으므로 한자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米’는 곡식이 여문 모습에서 나온 글자로 본 뜻은 ‘곡식의 열매’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구별할 때는 앞에 형용사가 붙는다. 즉 ‘쌀’은 稻米(혹은 白米), 옥수수는 玉米, 수수는 高粱米다. 후에 그것을 ‘쌀’이라고 해석한 것은 쌀이 主穀(주곡)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粉은 모든 곡식의 가루를 의미했다. 그래서 쌀가루면 米粉, 밀가루면 小麥粉(소맥분), 보릿가루면 大麥粉, 콩가루면 豆粉이 된다. 그런데 화장품의 ‘분’도 고운 가루였으므로 후에 粉飾이라면 ‘화장을 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가리기 위한 의도도 숨어 있다. 따라서 粉飾은 지금 ‘사실을 감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한편 扮飾(분식)이란 말도 있다. 역시 ‘화장을 하다’는 뜻이므로 ‘사실을 감춘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打扮裝飾’(화장하여 꾸밈)의 준말인 만큼 ‘감추기’보다는 아름답게 꾸며 자신을 ‘드러내는’ 데 비중이 있지 않을까? 실제로 중국어에서 ‘打扮’은 ‘화장’, ‘扮演’은 ‘배역을 맡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뜻의 扮裝이 그렇다.
따라서 굳이 이 둘을 구분하자면 粉飾은 재료, 扮飾은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전자는 ‘隱瞞’(은만·숨겨서 속임), 후자는 ‘顯示’(현시·드러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회사들의 會計 造作도 실제 내용을 숨기기 위한 행위이므로 扮飾보다는 粉飾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扮飾의 발음은 ‘반식’이 옳다. ‘분’으로 읽을 때는 ‘움큼, 움켜쥐다’의 뜻을 가지게 된다. 일종의 破音字인 셈이며 約定俗成(습관적으로 굳어짐)의 例라 하겠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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