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발레 연습실. ‘명성황후’의 제작사인 극단 ‘에이콤’이 뮤지컬로 제작하는 ‘둘리’(원작 김수정)를 위한 1차 오디션이 한창이다.
최연소 참가자인 김아영양(12)은 노래를 부르다 몇 차례 실수하자 얼굴이 빨개지면서 자신의 꿈이 ‘미래의 명성황후’임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심사위원장격인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는 둘리와 앙숙인 ‘고길동’처럼 애써 냉정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수고했어. 다음 0000번 들어오세요.”
‘둘리’의 주요 배역을 뽑는 이날 오디션에는 약 90명이 몰렸다. 이희정 임춘길 서영주 등 얼굴이 알려진 배우외에도 미인대회 입상자, 개그우먼, 가요제 대상 수상자 등 경력이 다양하다.
‘시험 과목’은 뮤지컬 특성에 맞게 춤과 연기, 노래 등 세 과목이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선보여야 하는 ‘1분의 승부’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응시자들의 ‘심리전’이 치열하다.
많이 눈에 띠는 게 주어진 시간을 늘리려는 ‘연장전’형이다. 노래를 부르다 틀렸다 싶으면 아예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어 피아노 반주자를 찾아 “키가 안 맞는 것 같다”며 다시 노래를 부른다.
고전적인 ‘읍소형’도 많다. “오랫동안 고길동역을 노리고 있었다”고 포부를 밝히거나 “다른 노래도 듣고 싶지 않냐”고 묻는다.
‘둘리’의 제작사가 에이콤이라는 점을 감안한 ‘명성황후’형도 있다. ‘홍계훈의 아리아’ 등 ‘명성황후’에 등장하는 곡들을 선택한 응시자가 많았다.
오디션장 밖 대기실의 열기도 뜨겁다. 조를 짜 ‘짜∼짠 짠’하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연기 연습도 한다.
뮤지컬 오디션은 90년대이후 활성화되는 추세. 윤대표는 “초기에는 오디션에서 해프닝이 많았다”면서 “이젠 아마추어 장기 자랑 수준의 기량을 가진 ‘뻔뻔한’ 응시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명성황후’의 대원군과 ‘렌트’의 콜린스 등으로 출연한 이희정(39)은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는 명성에 관계없이 많은 배우들이 오디션에 참가한다”면서 “오디션은 배우와 작품의 ‘궁합’을 보는 일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많이 참가할수록 작품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5월경 2차 오디션을 실시한 뒤 7월19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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