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배가본드>,거침없는 강렬한 영웅담

  • 입력 2001년 4월 16일 17시 32분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귀기(鬼氣)로 마을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온 신멘 다케조는 거칠고 난폭하게 보이지만 본심은 정이 많고 외로움을 타는 아이다.

'귀신의 자식'이라는 주변의 손가락질로 상처받아 누구보다 강해지겠다는 일념만 커진 다케조는 17살의 나이로 스스로 전쟁에 참가한다. 하지만 출세는 고사하고 패잔병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다케조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미력함을 뼈저리게 깨닫지만 끊임없이 자신이 강하다는 다짐을 되풀이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려 몸부림친다.

패잔병 처리병들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이 하나뿐인 친구였던 마타하치는 우유부단하고 패기 없는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케조를 배신한다. 그런 친구의 생사 여부를 알려주러 고향으로 돌아갔던 다케조는 마타하치의 어머니로부터 혼자만 살아 돌아와다는 원망을 사 위기에 몰리고 간신히 산으로 도망쳐 화를 면한다. 분노로 살기등등해진 다케조에게 원망과 슬픔, 분노와 살의로 얼룩진 마음을 다스리라는 깨달음을 준 다쿠앙 스님은 그에게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새 이름을 준다. 천하무적이 되고자 하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긴 여정이 이때부터 펼쳐진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의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 체제가 확립되기까지의 과도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쌍검을 사용하는 이도류의 시조로 후에 검성(劍聖)으로까지 불렸던 무사인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현재의 그의 이미지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 의해 확립된 것이라 한다. 소설, 영화, 연극, 드라마 등으로 사랑 받아온 일본 영웅의 전설은 만화 <배가본드>에서 다시 한 번 시작된다.

국내에도 거리농구 열풍을 몰고 온 인기절정의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차기작으로 슬램덩크 2부가 아닌 전통 시대물을 선택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농구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속도감 넘치는 탁월한 재미의 스포츠 만화를 그려온 그가 사극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으나 어느새 9권에 접어든 <배가본드>는 4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수많은 무사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대담하고 거침없는 연출, 웅장하고 시원스런 구도와 전작 <슬램덩크>에 비해 더 힘차고 정교해진 작가의 그림체는 진중한 분위기의 정통사극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함 없이 걸출한 데생력으로 묘사하는 무사들의 무용담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뜨거운 열정에 휩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15세이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될 정도로 잔혹하고 선정적인 장면도 없지 않으나 결코 무의미한 하드고어적 성향을 띄고 있지는 않다. 작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야모토 무사시의 성장과 그 여정이 풀어내는 재미다. 야성적 본능만으로 충만하던 미야모토 무사시가 죽음을 직시하고 공포에 눈뜬 뒤 비로소 진정한 강함을 깨달아 천하무적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성장해 나가던 것처럼 감칠맛 난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가장 일반적인 영웅담을 의미 있게 재구성한 작가의 역량을 인정받아 지난해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화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면 원작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와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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