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민음사)라는 도전적인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젊은 작가 이만교(34·사진)가 돌아왔다. 이씨는 최근 전작(全作) 장편소설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문학동네)를 내놓았다.
“외환위기 시대에 서민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당시 저 뿐 아니라 형제와 친구들이 슬픈 일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하지만 진지하지 않고 유쾌하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코믹 시트콤처럼요.”
무대는 외할머니와 홀어머니, 큰누나와 매형, 형과 형수, 작은 누나 등 아홉 식구가 모여사는 대가족이다. 이들의 가족사가 막내인 대학생 ‘나’의 입을 통해 유쾌하게 풀려 나온다. 이야기는 큰 누나가 ‘머꼬’라는 아기를 낳기까지의 과정과 ‘나’가 애인 해연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큰 줄기를 이룬다.
먹고 살만하던 이들에게 외환위기의 파도가 밀려온다. 큰 누나가 운영하는 고깃집이 문을 닫고, ‘나’의 해외연수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련은 있어도 눈물은 없다. 그나마 세끼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해 하며 산다. 소설가 이윤기가 발문에서 쓴 표현대로 ‘웃으면서 들려주는 매우 슬픈 농담’이다. “고생해도 성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패해도 현재에 위안을 삼는 것, 착한 서민들의 자화상 아닐까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살았으니 그나마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이런 ‘낭만적이고 순박한 믿음’이 불공평한 세상을 그나마 견디게 만드는 힘이란다.
이번 작품도 지난 번 작품 ‘결혼은 미친 짓이다’처럼 책상에 앉아 바른 자세로 읽기보다 베개를 깔고 방바닥에 누워서 보는 것이 제격이다. 작가도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읽어줄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기분 좋게 술취한 친구의 들뜬 수다를 듣듯이, 벽에 기대어 만화책 보듯 읽어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듯 싶습니다.”
자신의 소설이 영화와 비교돼도 불쾌하게 생각하는 작가가 많은데 스스로 만화책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 자체가 만화적 상상력을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재고하기 위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는 대목은 만화책의 상상 수법을 떠올린다.
알고 보면 이만교에 있어서 이같은 스타일은 정교하게 계산된 ‘함정’이다. 소설의 사회성과 서정성, 재미를 함께 잡으려는 시도다. 문체는 더욱 재기발랄해졌지만 문제의식은 지난 작품보다 한결 진지해졌다.
“제 소설의 일관된 주제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굴절시키는가’입니다. 그것은 ‘결혼은…’에서처럼 가부장적 결혼 제도를 와해시키기도 하고, 이 소설에서처럼 가족을 똘똘 뭉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서로 딴판인 것 같지만 두 작품은 저에게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집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