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미당 시작노트 공개-'主'를 노래했던 未堂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47분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운 흔적

미발표 육필 시작노트서 드러나

‘옥숙이는 옥수수를 잘 먹어요 / 아마 그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가봐요 (…) 우리 집에 찾아오는 옥수수 장사 할머니가 계신데요 / 할머니껏이라야 제일 맛이 좋다고 / 번번히 사선 이빨로 까 먹어요’(시 ‘옥수수’중에서)

초등학생이 쓴 동시 같은 이 시가 고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의 작품이라면 쉽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가 남긴 10권의 시작(詩作) 노트 덕분. 서울 관악구 남현동 자택에서 각종 공과금 영수증와 함께 발견된 이 노트들은 최근 동국대에 기증되면서 공개됐다.

1950년 5월부터 1999년 2월까지 써온 이 노트에는 50년 간 발표한 시 대부분의 초고와 프랑스 상징시, 중국 한시 등 1000여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앞서 예로 든 ‘옥수수’ 등 50여편의 미발표작이다.

이 노트를 통해 미당이 한때 기독교적 세계관에 경도됐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10권 가운데 첫 번째 시작 노트에 실린 ‘기도’(1950년 초겨울에 작성)와 1951년 새해 첫날 쓰여진 ‘신묘 첫새벽에’가 그 증거다.

‘초봄 얼음장이 풀리는 듯한 까닭모를 어지로움으로부터 나를 풀어주소서 /쓰디쓴 쑥잎이라도 한 포기 어서 나게 하소서 /그 옆을 스쳐가는 강물과 같이 나를 있게 하소서 / 이 오얏꽃 피는 메마른 나라에, 主(주)여 되도록 나로 마지막 한숨을 참으시옵소서’(‘기도’ 전문)

제자인 윤재웅 교수(동국대 국어교육과)는 “미당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1000여편의 작품 중에서 ‘주(主·하나님)’가 직접 거명된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면서 “절대자에게 의지하려 했던 나약한 모습이 부끄러워 발표하지 않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발표된 유명 작품들도 시작 노트에 적힌 초고와 발표된 원고가 대부분 달라 최종 시로 확정되기까지의 쉽지 않았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시’라고 칭송받던 미당이지만 단어 하나를 여러차례 바꾸는 고심 끝에 시를 완성했음을 알 수 있는 것.

초고와 전혀 다른 시로 완성된 경우도 있다. ‘내가 돌이 되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는 ‘내가/돌이 되면//돌은/연꽃이 되고//연꽃은/호수가 되고//내가/호수가 되면//호수는/연꽃이 되고//연꽃은/돌이 되고’로 발표됐지만 1966년 6월21일 최초로 시상을 적은 노트는 상당히 다르다.

‘내가 돌을 만들면 /돌은 연꽃을 만들고 /연꽃은 호수를 만들고 / 하눌밑에 있는 것은/ 이 호수 뿐이니/ 알라스카에서 여기까지/ 애인아 너는 잠이깨어/ 혼자 이 호수가를/ 바른 켠으로 돌아오고/ 여기에서 알라스카까지/ 나는 혼자 왼켠으로 돌아가고/ 칡꽃 등불 켜며/ 뻐꾹이 우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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