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刺客이 趙盾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朝服으로 정장을 한 채 瞑想(명상)에 잠겨 있었다. 刺客은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스스로 나무에 머리를 받아 自決하였다. 靈公은 계획을 바꿔 酒宴(주연)에 초대하여 죽이고자 했다. 술이 반쯤 돌았을 때 갑자기 伏兵(복병)이 덮쳐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 호위병 하나가 막아서는 바람에 일대 격투가 벌어졌다. 이 틈을 타 그는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옛날 사냥을 나갔을 때 사흘을 굶어 신음하던 靑年을 구해 준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후에 그는 靈公의 호위병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靈公의 포악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마침내 趙穿(조천)은 그를 죽이고 만다. 그는 趙盾의 사촌 동생이었다. 陰謀(음모)를 미리 알고 있었던 趙盾은 잠시 국경 부근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왔다. 당시 晉의 史官은 董狐(동호)였다. 그는 史冊(사책)에다 이렇게 적었다. ‘조순이 國君을 弑害(시해)했다.’ 깜짝 놀란 趙盾이 극구 변명하자 董狐가 말했다.
“국난 중에 丞相의 몸으로 도망간 것만 해도 잘못인데 돌아와 逆賊(역적)을 다스리지도 않았으니 弑害의 장본인은 당신이 아니고 누구겠소?” 후에 孔子는 董狐의 爲人(위인)을 격찬했다.
이 때부터 董狐는 史官의 代名詞가 되었으며 董狐之筆이란 ‘董狐의 筆法’, 즉 歷史를 記述하되 權勢 따위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董狐直筆(동호직필)이라고도 한다.
日本의 歷史 記述을 생각한다. 汚辱(오욕)을 위한 粉飾(분식)과 美化의 도구인가. 그들에게 한 말씀 忠告하고 싶다. ‘董狐直筆!’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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