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나리는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애어른’으로 불린다. 똘똘함을 넘어 지나치게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놓치는 법이 없다. 요즘은 엄마 아빠가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 중이란 것도 안다. 그것도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준비돼 온. 만일 진짜 이혼하게 되면, 자신은 엄마 아빠 중 누구와 살 것인지도 다 결정해 두었다.
한편 나리의 부모 역시 한창 고민에 빠져 있다. 두 사람의 이혼 사실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만약 알린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얘기해야 하나. 너무 두렵고 막연하기 때문이다. 나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감쪽같이 모른 채.
이혼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참 많이도 싸웠고(자기들 나름대로는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생각한다), 의견이 같은 적이 거의 없었지만 이번만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언뜻 비극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도 아이도 꽤나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부모는 자신들은 이혼할지언정, 아이에게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이 역시 부모의 이혼이 자기 잘못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다. 이혼은 가슴 아픈 얘기지만, 적어도 가장 나쁜 케이스는 아닌 것이다.
요즘처럼 이혼이 늘어나는 세태에서 아이들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모범 답안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혼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릴 때는 부부가 함께 말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혼하는 것은 둘 사이의 문제 때문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가 헤어지는 것도 자기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라거나, 뭔가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적어도 그런 잘못된 인식이나 죄책감을 심어 주어선 안되는 것이다.
부부가 이혼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단절하는 예가 많다. 그러나 부부는 헤어지면 남남이지만 부모 자식 사이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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