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여성 건축가 마랴 사르비마키(46)가 중국 한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전통건축을 비교한 논문으로 최근 헬싱키기술대에서 과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구조 상징 의미, 중국과 한국의 건축이 일본에 미친 영향.’
사르비마키는 최근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의 전통건축은 중국과는 달리 중심이 비어있는 게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의 영향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에 따르면 서울의 도시계획은 베이징(北京)에 비해 중심축의 중심적 성격이 훨씬 덜하다. 조선시대 양반집도 중국 명(明) 원(元) 청(淸) 시대의 사대부 집들과 비교할 때 인위적인 중심성이 덜하다. 일본에 이르면 아예 중심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관청은 성 한가운데 자리잡지 않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사르비마키는 중국의 건축양식이 한반도를 거치면서 겪은 ‘미묘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일본 사찰인 호류지(法隆寺)를 예로 들었다. 그는 607년 창건됐다가 화재로 불탄 후 670년대 이뤄진 이 절의 재건 공사에 당시 전쟁을 피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목공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류지의 구도는 중심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 대륙의 사찰과 크게 다르다.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金堂)과 탑(塔)은 중심축 선에 일렬로 서 있지 않다. 세부 건축물은 중국보다는 한반도 사찰을 더 많이 닮았다.
호류지보다 먼저 지어진 호코지(法興寺·592∼596년 건축)와 시텐노지(四天王寺·595년경 건축)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발굴된 절터의 모습을 보면 중국처럼 중심축을 따라 건물들이 대칭적으로 들어서 있다.
사르비마키는 “호류지에 이전과 다른 새 건축양식을 도입한 것은 한반도 목공일 가능성이 높다”며 “중심축 좌우의 대칭질서를 강조하는 중국 건축의 특징이 한반도를 지나면서 크게 변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르비마키는 “일본 학자들은 당시 중국 문물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도달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국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중국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만 언급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강조했다.
사르비마키는 85년 헬싱키기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87∼89년 일본 문부성(文部省) 장학생으로 도쿄게이슈쓰(東京藝術)대에서 공부했다. 이후 그는 동아시아 전통건축을 비교 연구해 왔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