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5명 국토종단 도시탐험…'지뢰밭' 거리서 떨고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31분


사진제공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진제공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세상 속으로 나선 장애인들에게 도시는 ‘지뢰밭’이었다. 무질서하게 서있는 입간판, 아무데나 불법 주차된 차량, 수시로 만나는 보도턱과 계단, 게다가 따가운 시선까지….

장애우(友)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김활용·金活勇)가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기획한 ‘장애우 도시탐험’ 행사에 참가했던 장애인 5명이 겪은 도시는 그야말로 ‘장애’투성이였다. 이 행사는 12일 서울을 출발, 해남 광주 대구 대전을 돌아 8일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프로그램.

이들 장애인은 비장애인 5명과 각각 2인1조를 이뤄 시장 백화점 공공기관 영화관 야구장 미술관 등을 돌아다녔다. 매일 한두가지 과제를 받아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내는 식이었다. 19일 귀경한 장애인들은 진이 빠진 상태였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무서웠던 도시’에 대한 절망 때문.

가장 고통스러웠던 사람들이 시각 장애인들. 혼자서 거리를 걷는 것은 거의 ‘자살’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고종현군(17)은 “보도 위 장애물을 피한다는 것이 차도로 빠져 사고를 당할 뻔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불법주차를 막는다고 인도 곳곳에 설치된 쇠말뚝이나 돌기둥은 치명적이었다”고 전했다. 난생 처음 음반매장에 갔었다는 그는 “광주 시내 대형 음반가게에 갔지만 국내 음반 중 포장지에 점자표시가 된 것은 H.O.T.4집뿐이었다”고 말했다.

김경아씨(34·뇌성마비 1급)는 대구에서 거리를 가다가 휠체어가 넘어졌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었다. 하지만 행인들이 모두 외면해 뒤늦게 따라온 일행이 발견할 때까지 누워 버둥대야 했다.

장애인들이 제일 불편했다고 꼽은 것은 화장실 문제. 전용 화장실이 없는 곳도 많았고, 있다 해도 너무 좁아 휠체어를 밀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쓰레기장이나 창고로 변한 곳도 있었다. 차라리 물을 마시지 말자는 ‘화장실 대책’을 마련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 가게에 물건을 사러 들어가면 구걸인으로 오해받거나 장애인은 지능도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어린아이 취급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조영일씨(26·척추장애)는 “화랑엘 가도 계단 때문에 불편할 테니 1층만 보고 가라고 하고 야구장에 가도 관람객이 별로 없는 외야석 자리로 안내받았다”고 전했다.

그래도 장애인들에게 따뜻했던 사람들은 어린이들. 시각장애인 손의권군(11)은 “길을 잃은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초등학생들이 도와줬다”며 “어른들은 길을 가르쳐 준답시고 캐인(장애인용 지팡이)을 잡고 흔든다든지 ‘여기저기’라고 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자신의 팔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이끌었다”고 전했다.

보조대원으로 참가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나라 간사는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과 그들의 육체적 불편을 따뜻하게 도와주려는 시민의식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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