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신동아500호

  • 입력 2001년 4월 20일 19시 16분


◇ 시사월간지 첫 500호 송두율 인터뷰등 눈길

시사월간지 ‘신동아’가 2001년 5월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신동아’는 70년 전인 1931년 11월 창간됐으나 동아일보의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36년 9월 동아일보와 함께 폐간됐다. 그 후 64년에 복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시사월간지 사상 지령 500호를 넘어선 것은 ‘신동아’가 처음이다.

‘신동아’는 복간 후 20여 년에 걸친 군사정권 아래서 꿋꿋하게 정론을 펴다 숱한 탄압과 필화를 겪었다. 68년 12월호는 박정희 정권의 차관도입 내막을 추적한 기사가 문제 되어 홍승면 신동아 주간과 손세일 신동아 부장이 구속되고 천관우 주필이 해직됐다. ‘신동아 사건’으로 불린 이 필화사건은 국회에서도 크게 논란이 됐다. 손세일 당시 부장(14, 15대 의원)은 “‘차관’ 기사는 신동아의 장기인 심층보도와 종합분석의 가장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회고했다.

신동아는 이밖에도 한·일 굴욕외교와 3선 개헌에 대한 비판, 70년대 초 사법부 독립선언 기사, 광주민주화운동 르포 등으로 민주화운동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신동아 편집자문위원을 맡았던 노재봉 전 총리는 신동아 5월호에 기고한 ‘나와 신동아’에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비판적 종합월간지였던 신동아는 늘 군사정권과 아슬아슬한 곡예를 거듭했다”고 회고했다.

64년11월 복간호부터 지금까지 신동아를 보고 있다는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은 유신반대운동으로 투옥되어 4년 간 신동아를 접할 수 없게 되자 출감 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청계천 중고서점을 뒤져가며 4년 치를 찾아내 밤새 읽었다고 한다.

신동아는 잇단 특종기사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기도 했다. 84년 8월호는 5·16쿠데타의 지도자로 부각됐던 장도영씨를 처음으로 인터뷰, 판매부수가 처음으로 10만부를 넘어섰다. 이어 87년 10월호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최초로 인터뷰, 이 전 부장으로부터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 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끌어내 한국 잡지사상 전무후무한 40만 부 판매기록을 세웠다. 이는 웬만한 일간신문 유료 구독 부수를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신동아에 연재된 ‘소설 조선총독부’(유주현), ‘산하’(이병주),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혼불’(최명희) 등의 장편소설은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 우리 문학사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됐다.

이번 신동아 5월호는 지령 500호 기념 특별호로 제작됐다. 각계 지식인 70인의 글이 실린 338쪽 짜리 단행본 부록 ‘21세기 한국 대개조론’에는 정책가형 인재양성론, 행복한 2등국가론, 한국판 노멘클라투라 해체론, 대중문화 마이너리그 육성론 등 우리 사회의 주요관심사들을 총망라했다.

특히 눈에 띄는 기사는 ‘깐수’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정수일 박사의 출옥 후 최초 기고 ‘한국·이슬람 1200년 교류사’, 이적(利敵)칼럼 논란을 빚은 송두율 교수 긴급인터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주도세력의 정체를 추적한 기사 등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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