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전쟁(1931∼45)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1901∼89)에게 전쟁책임은 있는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법적 책임인가, 정치적 책임인가, 아니면 도의적 책임인가?
이런 상반된 물음들은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되풀이돼 왔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의 전쟁책임 문제에 접근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그러나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는 과제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파헤친 허버트 P 빅스(Herbert P Bix)의 저서 ‘히로히토와 근대일본의 형성(Hirohito and Making of Modern Japan)’이 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히로히토가 영토 확장에 열광적인 권력자였다고 주장하고 있어 지난해 출간 직후 미국 역사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 수상으로 그 내용이 어느 정도 정당화된 셈이다.
히로히토는 패전 전 ‘대일본제국 황제’로서, 패전 후에는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히로히토가 사망했을 때, 일본 정부가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은 다음과 같았다.
“돌아가신 천황께서는 세계의 평화와 국민의 행복을 일편 단심으로 기원하시고, 날마다 몸소 실천해 오셨습니다. 폐하의 뜻과 달리 발발한 지난 대전에서 전쟁의 참화로 괴로워하는 국민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고 결심하셔서, 일신을 돌보지 않고 전쟁 종결의 영단을 내리셨습니다.”
저자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이런 황제상은 기대했던 ‘픽션’”이라고 주장하면서 히로히토가 중국대륙 침공부터 태평양전쟁 돌입까지의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음을 상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는 히로히토가 군부의 폭주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마음 아파했다는 과거의 이론을 부정한다. 히로히토가 자기 의사를 가지고 최고사령관으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이 책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800쪽이나 되는 이 대작은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일본의 전쟁책임 전체 속에서 균형 있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런 히로히토의 모습을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기피해 왔다. 황제의 전쟁책임을 묻지 않으면 자신의 전쟁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군위안부’ 징병 징용 등에 대한 배상문제,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역사인식 문제 등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박환무(숭실대 강사·일본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