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 듣기]베토벤 음악이 원전 악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유

  • 입력 2001년 4월 22일 18시 54분


베토벤
최근 몇 번의 기사로 인해 독자들로부터 원전연주(原典演奏·옛 음악을 연주할 때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양식을 고증해 되살리는 것)의 대변자처럼 취급되곤 했다. “원전연주 악단의 소리가 진짜 좋습디까, 나는 귀에 설던데”라고 묻는 분도 여럿 있었다.

기자의 대답은 이렇다. “글쎄요, 바로크시대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데는 원전연주가 좋지만 베토벤부터는 별로입니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서양 악기의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1840년대 폭발적인 ‘악기혁명’이 10여년 동안에 서양악기 대부분의 모습을 바꿔놓은 것이다. 악기마다 소리가 훨씬 커졌고 어려운 기교도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왜 악기가 바뀌었을까? 어떤 음악학자들은 ‘산업혁명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금속세공술의 발전이 악기의 개량에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총기의 전파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반도를 침략해야만 하는 내적 동인(動因)이 일본에 있었고 총은 그 수단이었을 뿐이다. 18세기 중반 유럽에는 악기가 바뀔 수 밖에 없는 동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크시대까지 음악가는 귀족과 교회에 고용됐다. 고전주의 시대가 되자 한 뛰어난 음악가가 ‘귀족의 귀여움을 받기 위해 음악을 하지 않겠다’라고 마음먹었다. 대중을 위한 극장에서 콘서트 티켓을 팔면 자립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그를 용납지 않았고 그는 불우하게 죽었다. 실패한 최초의 자립음악가, 그의 이름은 모차르트였다.

그가 죽은 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에 진군해 들어왔다. 프랑스군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전파했다. 패전을 겪은 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귀족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상공업의 발전으로 시민들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이 콘서트장을 가득 메웠다. 모차르트의 후배인 베토벤이 그래서 자립에 성공했다.

우아함을 숭앙했던 귀족의 음악과 달리 시민의 음악인 베토벤의 음악은 선동적이라고 할 만큼 격정으로 가득 차있었다. 자기성취욕이 강했던 시민층에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 사망 후 20여년 뒤, 앞에 말한 대로 악기혁명이 일어나 악기들의 모습을 바꾸었고 연주회장을 더욱 큰 소리로 가득 채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귀족의 살롱에 적합한 악기는 더 이상 베토벤과 그의 후예들이 작곡한 ‘격정의 음악’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악기혁명 이전에 작곡된 것이지만, 이미 그 자체에 새로운 악기를 위한 ‘내적 논리’를 잉태하고 있었다. 기자가 원전악기로 연주하는 베토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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