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루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유명 영화감독의 딸이면서 친구 하나 없이 도도한 얼음공주 동경이의 존재를 자꾸만 의식하게 된다. 자신을 상대도 해주지 않는 동경이에게 조금이라도 다가서기 위해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독서 토론회 가디록에 가입할 것을 결심하는 루다. 그런데 가디록의 가입 기준은 성적 상위 20%로 제한되어 있었으니... 과연 루다의 앞날은?
<쿨핫>은 루다와 동경이를 비롯한 여러 주인공들이 현재와 과거에 얽힌 일련의 시간들을 공유하면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가는 만화다. 중심 인물은 주로 가디록에 속해 있는 회원들과 가디록이 있는 학교에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 정도? 간혹 화자가 없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심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같은 시점의 같은 사건은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반복, 재생된다. 그 미묘한 차이야말로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관찰 혹은 직관을 통한 호감,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선망과 동경,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신뢰하고 신뢰받고 싶다는 열망. 그럼에도 모든 일이 쉽게만 풀리지 않는 것은 개개인이 형성하고 있는 자아(自我)라는 사랑스럽고 지극히 개인적인 부산물 때문이리라.
국내에서는 주독자층이 소녀인 만화를 일반적으로 '순정만화'라 부르는데 과연 유시진의 만화도 '순정만화'라는 애매모호한 분류에 끼워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녀의 만화는 차가울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철학적이다. 그렇다해서 대단히 심오한 주제를 현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며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장황하게 폼만 재는 것도 물론 아니다. 사회에 속한 개인으로서의 고민과 성장을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 큰 특징중 하나이며 이러한 보편적 양식과 지각을 갖춘 캐릭터들은 주류(?) 만화에서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쿨핫>에 등장하는 다수의 캐릭터들은 꽤나 개성적인 편이다. 우리의 일상 어딘가에 존재할 법 하면서도 동시에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달까.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체적이며 진보적인 그들은 고등학생이라 하기엔 이미 너무나 확고한 자기 세계관을 확립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떠리. 그들의 작은 일상, 조그만 독백 하나가 당신과의 접점을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쿨핫>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다. 나 자신의 모습을 완성해 나가는 인생이란 여정에 있어 진정한 이해자를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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