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복기를 지켜보려던 사람들만 머쓱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23일 열린 명인전 본선 11국.장면도를 보자. 중앙에 거대한 흑(유 9단)의 세력이 백의 실리를 압도하고 있는 형세. 이제 백이 중앙 흑 세력을 지울 마지막 찬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어려운 형국이다. 목 5단은 가벼운 응수타진으로 백 1에 껴 붙였다. 내려 뻗어 차단할 것이냐, 아니면 물러설 것이냐를 물어본 것. 보통 때라면 흑이 어떤 식으로든 응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 9단은 훌쩍 손을 돌려 흑 2에 보강했다. 유 9단은 중앙 흑세를 완성시키기 위해 흑 2의 곳을 지키는 것이 ‘필수’라고 봤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백 1, 흑 2의 교환을 본 검토실의 최명훈 7단은 ‘쯧쯧’ 혀를 차면서 백 1 대신 ‘가’의 곳에 돌을 놓았다. 불리한 백으로선 좀 무리한 듯하지만 ‘가’까지 뛰어들어 승부를 걸어야 했다는 것. 결국 백 1은 검토실에서 ‘방심의 한 수’ ‘패기 부족의 한 수’ ‘앉아서 패배를 기다린 한 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후 진행에는 더 이상 변화가 없었다. 흑 11집 반 승.
패배에도 납득할 수 있는 패배가 있다.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다 상대의 기막힌 묘수로 인해 질 수도 있다. 또 다 이긴 바둑을 막판에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승부사로서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건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졌을 때일 것이다. 목 5단이 반면 15집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돌을 던지지 않고 끝까지 둔 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던 자신의 바둑에 대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