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데뷔시절]이영애, 수줍음 많이 타 도도한 연기 애먹어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52분


많은 연예인들이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잡지와 인연을 맺었다. 잠실여고 1학년 때인 1986년, 당시 친구들과 돌려가며 볼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여학생>이라는 잡지의 표지 모델로 우연히 발탁됐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독어독문학과 89학번으로 입학한 이후 나는 한참동안 도수 높은 안경에 고등학생 수준의 옷차림으로 교정을 누볐다.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당시 홍콩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류더화(劉德華)와 찍은 초콜릿 광고였다. <여학생> 표지 모델 사진을 기억하고 있던 한 광고계 인사가 나에게 광고 출연을 제의해 광고를 찍게 됐다.

촬영은 새벽에 대학로에서 진행됐는데, 어떻게 알고왔는지 류더화를 보기위해 수십명의 여고생 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나는 당시만 해도 홍콩영화를 거의 보지않은 탓에 촬영진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가 유명한 스타인 줄 알았다.

이 광고를 찍은 지 1년 뒤 나에게 ‘산소같은 여자’라는 타이틀을 안겨 준 M화장품 광고 모델을 하게 됐다. 대학 3학년이었던 나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진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중학생 때부터 릴케, 헤세 등 독일문학에 푹 빠져지내던 내가 막상 독일어와 멀어지게 되자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안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에 대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곧 연예계 생활의 재미를 느끼게됐고, 1992년에 드디어 탤런트로 데뷔했다.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도도희 역을 맡았는데, 이름처럼 앙칼지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담아보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당시 M화장품 모델을 하면서 도시적인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짙게 풍겼던 게 배경이었다. 하지만 내 실제 성격은 ‘도도한’ 커리어우먼과는 정반대로 수줍음을 많이 탄다.

이처럼 다른 얼굴을 ‘연출’하려다보니 내가 봐도 부자연스러웠고, 같이 출연했던 유동근 송승환 선배님에게 거의 매 장면마다 꾸지람을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광고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다 생긴 ‘불협화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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