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40년前의 착각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53분


두 딸을 둔 50대 주부 박모씨. 평소 가족으로부터 ‘공주병’보다 심각한 ‘왕비병’ 환자라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그런 말마저 ‘예뻐서 샘내는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40년 만에 갖는 초등학교 동창회날.

아침부터 사춘기 소녀처럼 들뜬 모습으로 찜질방으로 미용실로 다녀온 박씨는 백화점 세일 때 큰맘 먹고 산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나섰다.

웬일인지 금세 새침한 얼굴로 돌아온 박씨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두 딸.

“왜 그래? 엄마보다 이쁜 아줌마라도 있었던 거야?”

‘아빠한테는 절대 비밀’을 다짐한 후 엄마의 고백을 들었다.

“초등학교 때 허구한 날 내 자리쪽만 쳐다보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맞아, 엄마가 아빠랑 싸울 때 그 사람한테 시집갔으면 ‘떠받듦’을 받으며 살게 됐을 것이라고 그랬잖아.”

“근데, 오늘 그 애가 꼭 나오라고 전화까지 해서 나가봤더니만….”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는 듯 냉수를 들이켠 박씨.

“들어오자마자 내 짝꿍 미숙이를 찾으면서 ‘옛날에 미숙이 쳐다보느라 공부를 못했다’는 거야!”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