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여러나라 말 한꺼번에 배운다＂

<다언어 활동단체 '라보' '렉스' 인기>

“굿 에프터눈.”

“곤니치와.”

“봉 수아르.”

“우안(旿安).”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동 동아아파트 307동 502호.

초등학생 10여명이 엄마 손을 붙잡고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여러 나라 말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多)언어 활동’ 단체인 ‘렉스’ 회원들이 정기 모임을 갖기 위해 동료 회원집을 찾은 것이다.

참석자들은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세계 각국의 동요와 민요에 맞춰 한바탕 율동과 게임을 즐겼다.

가쁜 숨을 고르며 원형으로 둘러앉자 테이프를 듣고 따라 하고 또 자기가 외국어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즈마펠 김동균…(내 이름은 김동균인데…).”

프랑스어로 자기 이름과 가족을 소개한 초등학교 6년생 동균이는 “라스트 서머 버케이션…(지난 여름 방학 때…)”이라며 영어로 말을 바꾸어 지난 여름 방학에 일본에 가서 찍은 사진을 꺼내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을 설명하는 도중에 말은 다시 일어로 바뀌었다.

“고레와 컴퓨터노 게이므 데쓰, 고레와 바비큐 파티 데쓰….(이것은 컴퓨터 게임이고, 이것은 바비큐 파틴데….”

동균이의 순서가 끝나자 초등학교 3학년 지수양이 “니 하오, 워 지아오 민지수(안녕, 나는 민지수라고해)”하며 중국말로 이어받아 영어와 중국어로 자신의 취미생활을 설명했다.

아이들 사이사이 섞여 앉은 엄마들도 ‘니꼬창’ ‘도나’ ‘마마’ 등 애칭을 소개한뒤 그동안 외워둔 외국어 표현들을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책이나 노트는 없었다. 발음이 서툴거나 문장이 엉성해도 고쳐주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말을 주고 받았다.

▽다언어 활동이란〓외국어로 노래 율동 연극 게임 등을 하거나 외국어 테이프를 반복해 듣고 따라하면서 외국어를 배우는 활동이다. 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러운 외국어 환경에 ‘노출’돼 외국어와 ‘놀다’보면 외국어에 친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는 것.

국내의 대표적인 다언어 활동 단체는 라보(LABO)와 렉스(LEX).

일본 언어학자가 시작한 다언어 활동 단체인 라보와 히포의 프로그램을 각각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렉스는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9개 국어를, 라보는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를 배운다.

외국어 하나도 힘든데 왜 여러 언어를 배우는 걸까.

한국라보 김호숙 사무국장은 “다양한 언어의 발음에 익숙해지면 소리 자원이 풍부해져 외국어를 배우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배우나〓다언어 활동의 핵심은 자연스러운 언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를 위해 매주 1, 2회 지역별로 가족 모임을 갖는다. 1년 이상 다언어 활동을 해온 회원이 모임을 주도한다. 장소는 회원 집이나 아파트 주민회의실 동사무소 등.

먼저 각국의 동요나 민요를 따라 부르며 게임과 율동으로 몸을 푼다. 본격 수업은 테이프를 듣고 따라하기. 테이프에는 ‘난 누구지’ ‘엄마 이게 뭐야’ 등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흔히 쓰는 말과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대화가 담겨 있다.

회원들은 집에서 틈틈이 테이프를 듣고 표현을 외워두었다 모임에서 외운 내용을 발표하거나 이를 응용해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수업은 철저히 듣기와 말하기 위주로 진행된다.

▽해외 민박으로 실전연습〓방학을 이용해 미국 일본 뉴질랜드 등을 방문, 현지 가정에 머물면서 살아 있는 언어를 배운다. 왕복 비행기값만 내면 나머지는 현지 민박 가정에서 무료로 숙식을 해결해준다. 거꾸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회원 가정에 머무르며 교류를 한다. 일본은 2주 65만원선, 뉴질랜드는 같은 기간에 160만원, 미국은 한달간 330만원 정도.

▽회원이 되려면〓뱃속에 있는 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주부들이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렉스는 가입비가 가족당 1만원, 월 회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5만5000원. 라보는 4인 가족 7만1000원, 가입비는 아이 1명에 1만원이다. 회원이 되면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가족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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